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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죽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현실감이 없어서인지 이상하게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발을 들일 때까지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건조하기까지 한 눈을 비비며 둘러본 장례식장은 애인의 생전 대인관계가 의심될 정도로 조용했다. 주변 사람을 소개해주지도 않았고 간섭할 마음도 없었으니 늘 이래왔던 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봤던 애인은 외로움을 많이 타던 사람이었는데 텅 빈 장례식장을 보니 가는 길까지 외롭겠다, 싶었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사진 앞에 올리고 조의를 표했다. 액자 속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애인을 보자니 그제야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진짜 죽었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옆에서 사랑을 속사이던 애인이 저 건너 누워있구나. 멍하게 향 연기를 응시했다. 머리가 멍하고 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한평생 겪을 거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감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나는 낯선 경험에 대처하는 법을 몰랐다.

 

여전히 멍하게 연기를 응시하고 있는데 울부짖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소리의 근원인 갈색의 동그란 머리통을 가진 마른 남자가 눈물로 짓무른 얼굴을 하고선 장례식장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인상을 찡그렸을 소음이었지만 비슷한 처지인 듯해 보여 시선이 갔다. 같잖은 동정심까지 일었다. 나와는 다르게 세상이 무너진 듯 울며 비틀거리던 남자는 그대로 내가 서 있는 장례식장에 발을 들였다.

 

_ 왜 그랬어. 왜?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채 땅바닥에 주저앉은 남자가 미친 듯이 바닥을 치며 중얼거렸다.

 

_이제 괜찮다며. 외롭게 하지 않는 사람 만났다며.

 

멍하던 정신이 바짝 차려지며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애인이 나 몰래 바람이라도 피웠던 건가? 아니면 전 남친? 아까까지만 해도 애인에게 지독히 나밖에 없었구나, 했던 오만이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전부 사그라들었다.

 

_야. 너지. 네가 죽였지. 네가 하늘이 죽였잖아. 살려내!

 

애절한 눈으로 액자를 쳐다보다 국화에 입을 맞춘 후 사진을 올려놓던 남자가 나를 돌아보며 눈을 치켜떴다. 매서운 눈빛에 말문이 턱 막혀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자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단박에 다가와 기세 좋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_너, 내가 알아. 하늘이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다 봤어.

_...

_하늘이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데 네가 그따위로 해?

_...

_하늘이는 내가 더 행복하게 해주었을 거야. 너 같은 거 말고 내가!

_...뭐?

_어쩐지 얼굴 반반하게 생긴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어. 몸이나 섞어보겠다고 만났던 거잖아.

_너.. 스토커냐?

 

정곡이 찔린 것처럼 쫑알거리던 입술을 굳게 다무는 남자를 보자 시선이 경멸로 가득 찼다. 애인이 소개해준 적도 없는 남자가 나에 대해 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거 하며, 내가 애인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 하며. 내가 느끼기에는 이 남자의 모든 말들이 자신이 스토커임을 증명했다.

 

_맞잖아. 난 너 같은 애 본 적도 없는데 날 어떻게 아냐고. 하늘이 스토커지?

 

애인은 주로 자신의 집에서 데이트하는 것을 선호했다. 햇빛이 좋은 날 집 밖으로 나가자고 끌어도 기어코 침대에 누워 나를 감싸 안았다. 우리 집에도 햇빛 들어. 무어라 더 말하며 꼬셔보려 했지만 그대로 입술에 틀어 막혔다. 끌고 나가려는 나와 집에 있으려는 애인의 실랑이가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데이트코스는 집집집이었다. 배달 시켜 먹고 낮잠 자고 영화 보다가 몸 섞고. 매번 똑같은 루트였지만 둘이어서 좋다고 애인도 그랬고 나도 입이 닳도록 말했다. 재미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어도 함께여서 좋았다. 그런 우리였는데 하늘이가 자살을 한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 한구석에 들었다. 그 이유가 내 눈앞에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노려보는 이 남자와 관련 있을 거라는 생각도.

 

_너 때문이냐?

_뭐?

_너 때문에 힘들어서 자살한 애를 남 탓으로 돌리면 속이 좀 나아지냐?

_..아니야.

_뭐가 아닌데. 딱 봐도 네 견적은 스토컨데.

_아니라고! 하늘이가 나한테 평생 같이 살자고 했단 말이야.

_이제는 망상까지 하네. 네가 뭔데 하늘이랑 같이 살아.

_망상 아니야! 지금도 하늘이 집에 사는 ㄷ. 헙.

 

이 남자가 하는 말이 전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정신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몇 번이고 들락거렸던 애인의 집에 자기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생각이 점점 복잡해질 때 남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하늘이가 비밀 이랬는데.. 이 새끼 진짜 미친놈인가?

 

_그래서 뭐 네가 진짜 서하늘 집에 산다고?

_..그래.

_거짓말이면 내가 너 스토킹으로 끌고 경찰서 간다.

_아씨.. 맞다고.

_앞장서.

 

나도 이게 무슨 미친 짓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하고 싶었다. 애인을 보내줄 때 마지막으로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지. 만약 이 남자 말이 다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애인과의 연애에 대해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

 

 

애인의 집 앞에 서서 남자에게 고갯짓했다. 비밀번호 쳐. 잠시 주춤거리던 남자는 이내 비밀번호 네 글자를 당연하다는 듯이 꾹꾹 눌렀다. 1120 사귀기 시작한 날. 사귀고 처음 이 집에 오던 날 애인과 같이 바꾼 비밀번호였다. 절대 까먹지 마! 하면서 으름장을 놓던 모습이 정신이 나간 건지 순간 눈앞의 남자와 겹쳐 보였다. 강민희 미친 새끼. 뭐하냐? 온종일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별것이 다 이상하게 보이네. 자기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털었다. 그사이 남자는 이미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같이 들어가 방 안에 서자 어제도 맡았던 디퓨저 향이 코를 간질였다. 분명 어제도 왔던 집인데 집주인이 아닌 낯선 사람이랑 있다고 다른 집 같이 느껴졌다. 멍하니 애인의 흔적을 둘러보는데 남자가 자연스럽게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_어디 가냐?

_..내 방.

 

화장실 옆 작은 방문을 연 남자가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 화장실 옆방. 애인이 살아있을 때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죽어도 못 들어가게 했던 곳이었다. 방이 정리가 안 되어 더럽구나. 하고 넘겼던 방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줄이야.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이상하게 생각이 자꾸만 남자의 말을 믿게 되었다. 아니겠지, 하던 마음이 사그라들고 진짜 인가 봐, 하는 마음이 들자 확인 사살당할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발을 옮겨 방안을 들여다봤을 땐 남자의 흔적이 가득한 작은 방이 나왔다. 진짜로 같이 살았던 거다. 남자와 애인은. 눈앞이 흐려졌다. 진짜 내 두 눈으로 확인받자 이때까지의 사랑놀이에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서하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사귀어 왔던 거지? 내가 사귀었던 사람이 서하늘이 맞나? 애초에 내가 이 남자와의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닌가?

 

_사귀진 않았어.

_..뭐?

_내가 서하늘 좋아했던 건 맞는데. 사귀진 않았다고.

_...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_그럼 믿지 말던가. 난 안 사귀었으니까.

 

혼란스러웠다. 모르고 지냈던 사실이 머릿속에 한 번에 들어차자 현기증이 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지도 않는데 같이 사는 저 남자나 좋아하지도, 사귀지도 않으면서 같이 산 애인이나. 애인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없지만 좋아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았다. 상식 선상에서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_한 가지만 묻자. 내가 이 집에 드나들 때 너도 집에 있었냐?

_...어.

_어제도?

_어.

 

이게 뭐지, 시발. 내가 지금 너무 보수적인 건가?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오픈마인드가 된 거지?

 

_어제 섹스하는 소리도 듣고.

_응.

 

시발.. 진짜 미친 새끼다, 서하늘. 집 안에 남자 들여놓고 나랑 여기 침대서 사랑놀이를 했다는 거잖아. 혼자 미친 듯이 사고가 정지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남자는 방을 나가 거실 바닥에 앉았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치며 따라 거실로 나오자 남자는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왔다.

 

_마실래?

 

지금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갈 상황인가.

 

_싫으면 말고.

 

생각을 정리하려 해도 계속 머리가 멍했다. 애인의 열린 마인드 연애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깡 소주로 병나발을 불던 남자가 말을 툭 던졌다.

 

_너만 온 것도 아닌데 이 집에. 왜 오버야.

_..그건 또 무슨 소린데.

_너랑 사귀면서 이 집에 들인 사람 열 손가락에도 못 꼽아.

_...

_그러니까 그만하고 앉아. 원래 그런 애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계속 새로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는 남자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술이 들어가자 다 불 모양인지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물어보면 전부 대답해줄 것 같은 모양새에 속에 담아왔던 말을 꺼냈다.

 

_..넌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_나 고등학교 때 아빠한테 맞고 쫓겨나서 갈 데 없는 거 거둬준 게 하늘이야.

_...

_그때부터 이 집에서 쭉 살았어. 몰래 좋아하면서. 근데 어느 날부터 방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 으름장 놓더니 남자를 데려오더라?

_..야.

_방 안에서 나오지 말라니까 한 걸음도 안 나갔어. 말 잘 듣겠다고 방에 처박혀서 변태처럼 소리만 엿들었다고. 화장실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저 방에서.

_...

_그래도 난 좋았어, 같이 지낼 수 있는 거만으로 만족했어. 너 만나기 전까지는 집에 오는 사람이 매번 바뀌어도 그 사람들보다 내가 하늘이 우선순위에서 상위였으니까.

_...

_근데 너 만나고부터 변했어,

_뭐?

_집에서 오만 짓 다 해도 남을 재우는 일은 없었던 서하늘이 너 만나고부터 변했다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하늘은 나름대로 집 안에서 자신만의 규칙이 있었다. 본인의 집이긴 하지만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닌 만큼 피해를 적게 주는 쪽으로 행동하자. 그래서 정한 것이 남을 집에서 재우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형준은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2년을 꼬박 그렇게 지냈다. 남들이 호구라고 욕해도 한집에 같이 살고 하늘이 저를 가장 위해준다는 생각 하나로. 하늘이 오랜만에 외출했던 날 민희를 만났다고 했다. 하늘이 그렇게 들떠서 얘기하는 것을 처음 본 형준은 2년 동안 느껴 본 적 없던 불안을 느꼈다. 더는 내가 우선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며칠 지나지 않아 하늘은 형준에게 으름장을 놨다. 절대 나오지 마. 화장실도 가지 마. 배고파도 참아. 너 여기 있는 거 들키면 나 죽을 거야. 그리고 그날 민희를 데려왔고 처음으로 형준 아닌 남을 저의 집에서 재웠다.

 

_서하늘이 그랬다고.

_어.

_그걸 왜 나한테 다 말해주는데?

_서하늘이 너 좋아했으니까.

_나랑 사귈 때도 남자 데려왔다며.

_외로움을 못 견뎌 했으니까. 아무리 좋아해도 너로 만족 못 했던 거야, 서하늘은.

 

아까부터 들어왔던 충격적인 이야기에 아직도 여전히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생각보다 쉽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진득하게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건지 생각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눈앞의 남자는 아까부터 병나발을 불더니 이제는 맛이 간 건지 목까지 달아오른 채로 땅에 드러누웠다. 남자가 먹다가 남긴 소주를 그대로 들이켜고는 남자의 옆에 나란히 드러누웠다. 둘 다 아무 얘기 없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데 남자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대답을 하지 않자 남자가 황당한 말을 해왔다. 나를 서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안아줄 수 있어? 이 새끼가 술 취해서 못 하는 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자 남자는 술에 취해 반쯤 감긴 눈으로 올곧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_미친 새끼야. 서하늘 어제 죽었어.

_나도 알아. 그래도 너한테 하늘이 흔적이 제일 많을 거 아니야.

_지랄하지 마라, 좀. 너 제정신 아닌 건 알겠는데. 이건 아니지.

_나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야. 너도 나 서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해. 얼굴 가리라고 하면 가릴게.

 

이 새끼는 진짜 미친 게 분명했다. 제정신이면 죽어도 못할 말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남자가 옷장을 열어젖히더니 하늘이 생전에 자주 입었던 빨간 옷을 꺼냈다.

 

_이거 입고하면 되지? 나 서하늘이랑 체격도 비슷하잖아. 아니면 네 눈을 가릴까?

_미친 소리 좀 그만해! 너 제정신 아니네. 너 알아서 해. 난 간다. 애초에 제정신 아닌 놈이랑 무슨 얘기를 하겠다고. 내가 미친놈이지.

 

그래도 집을 박차고 나왔다. 애인을 떠나보냈다는 충격에 잠시 나도 미쳤던 것이 분명했다. 저런 놈을 상대해주고 있었으니. 처음 봤을 때부터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으면 무시했어야 하는 게 맞는데.

 

 

-

 

 

애인을 떠나보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정리되어서인지 생각보다 애인의 마지막 길을 보는 것에 무덤덤했다. 옆에서 지인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했지만,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입 모아 나를 독하다고 했다. 남들은 그냥 헤어지면서도 한 달을 앓는다는데,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의 대화였다. 답답함을 어디에 풀 수도 없었다. 친구 놈이 오랜만에 술이나 마시자며 연락이 왔다. 술에 취해서 아닌 척 속사정을 털어놓을 생각으로 나간 자리에는 친구는 없고, 웬 여자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으로 빨리 털고 일어나자. 하는 문자를 보고서야 소개팅 자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반감이 들었다. 하늘이 그렇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뒤에 온 친구의 문자에 그냥 소개팅에 임하기로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소개팅에 임하기로 했지만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애인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충격에 나도 미친 것이 분명했다. 이름도 모르는 갈색 머리의 남자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떠오른 순간부터 앞의 소개팅녀가 말리든지 말든지 들이켠 소주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자는 욕을 읊조리며 자리를 떴고, 나 혼자 남아 소주를 계속 들이켰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을 땐 서하늘의 집이었다. 아, 여긴 왜 왔어. 마른 얼굴을 비비며 침대 헤드에 기대앉자 그제야 내가 맨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뭐야? 어제 어떻게 여기 왔지? 화장실 쪽에 소리가 들려 쳐다보자 똑같이 맨몸으로 나오는 사람은 어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 남자였다.

 

_나 왜 여기 있어?

_네가 나한테 데리러 오라며.

_..그럼 왜 벗고 있는데?

_네가 문 열자마자 덮쳤어, 나.

_...

_알아. 나 서하늘로 착각했던 거.

 

착각해줘서 고맙긴 한데.. 머릿속을 스치는 어젯밤의 기억은 나는 절대 이 남자를 서하늘이라고 생각하며 안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_밥 먹을래?

_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냐?

_이 상황이 뭔데. 너도 원했고, 나도 원해서 한 건데.

 

충격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빤질 한 얼굴로 뻔뻔하게 말을 이어가는 남자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어버버 거렸다. 나 진짜 애인 죽은 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잤네. 딴 사람이랑. 쓰레기도 아깝다. 나한테는.

 

_..그나저나 너 이름이 뭐냐?

_그게 왜 궁금한데.

_어제, 그.. 것도 한 사인데 이름은 알아야지.

_그냥 서하늘이라고 생각해.

_아 좀.

_..송형준.

 

송형준. 속으로 이름을 한번 곱씹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

 

 

씻고 나왔을 때 나를 반기는 것은 진짜 마주 보고 밥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는지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앉아있는 송형준이었다.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맞은편에 앉자 형준이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정적 속에서 묵묵히 밥을 먹다가 이러다간 체하겠다 싶어 먼저 입을 열었다. 나이는? ..스물하나. 동갑이네. 학교는? 고졸. 그러면 일 다니냐? 어. 더는 이어나갈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적막 속에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만 울렸다. 먼저 다 먹은 내가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시선이 따라 올라왔다. ..가게? 어. ..잘 가. 풉. 누가 봐도 가지 마, 하는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주제에 잘 가, 라고 말하는 송형준이 웃겼다. 저 행동에 귀엽다고 생각한 나도 웃겼지만. 어차피 학교도 방학이니 조금 더 이 집에 눌러있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으면서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었다.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_집에 있으면 뭐 해, 평소에.

_하늘이는..

_서하늘 말고.

_어?

_서하늘 말고, 송형준 너. 뭐하냐고.

 

내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준의 표정이 굳었다.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을 연 형준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_난 너랑 사귀겠다는 게 아니야. 너한테서 하늘이 흔적을 찾겠다는 거지.

_..

_너도 서하늘이 그리워서 여기 계속 오는 거잖아. 그럼 그거에 맞게 행동해. 나랑 연애하듯이 굴지 말고.

_처음에는 서하늘이 그리웠던 거 맞는데. 지금은 아닌데.

_뭐?

_너한테 호감 생겼다고.

 

예상했던 대로 형준의 얼굴에 경멸이 들어찼다. 너, 나가.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다시는 찾아오지 마. 황당했다. 나에게서 진짜로 죽은 서하늘의 흔적을 찾겠다고 그런 짓까지 하는 송형준이. 이제는 가라고 등까지 떠미는 형준에게 밀려 집 밖으로 나왔다. 잘 생각해봐. 산 사람은 살아야지, 형준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

 

 

며칠 후에 서하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보자마자 알았다. 분명 송형준이다. 벨이 네 번 울리다 꺼진 화면을 바라보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늘이 즐겨 듣던 노래가 여전히 컬러링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노래가 다 끝나갈 때쯤에야 전화를 받은 형준은 열 번을 불러도 답이 없었다. 하늘의 집으로 찾아갈 생각으로 코트와 지갑을 챙겨 일어나자 건너편에서 형준이 말해왔다. ..보고 싶어, 강민희. 지체할 것 없이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내달렸다.

 

집 문 앞에 도착해 머리를 한 번 정리한 후, 익숙한 듯 이제는 낯선 비밀번호를 눌렀다. 하늘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게 된 지 얼마가 지났는지도, 형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된 지 얼마가 지났는지도 몰랐다. 그냥 취한 목소리로 내가 보고 싶다 하던 형준의 목소리만 머리를 울렸다. 활짝 열어젖힌 문 안으로 침대에 엎어져 있는 형준이 보였다. 코트를 현관에 벗어던지며 안으로 들어서자 빨간 얼굴에 풀린 눈을 한 형준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첫날 입겠다고 난리 쳤던 하늘의 옷을 입고 있는 형준이 보이자 그대로 옷을 벗기며 입을 맞췄다. 내일 태워버려야지.

 

일을 치르고 난 후에 침대에 껴안고 누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숨을 골랐다.

 

_강민희. 우리 이러다가 벌 받는 거 아니야?

_누구한테? 서하늘?

_미친놈아..

_괜찮아. 다들 그러더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_...

_모두가 우리를 이해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 너 아직도 술 냄새 나.

 

걱정하는 형준을 장난스럽게 달래며 죄책감을 억눌렀다. 우리는 아직 어렸고, 살아갈 날이 많았다. 일어나면 1227, 오늘 날짜로 비밀번호부터 바꿔야지. 하고 생각하며 형준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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