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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여덟에게

 

w. 멍

 

 

미성숙. 아직 채 다 자라지 않아 온전하지 못한 상태. 우린 아직 미성숙하다. 온전하지 못한 사고를 가지고 온전하지 못한 행동을 하며 그 행동들을 정당화시키기에 바쁘다. 한낱 열여덟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한정되어 있다. 슬픔, 기쁨, 행복 그리고 증오. 증오를 기반한 애증. 강민희가 송형준에게. 송형준이 강민희에게 느끼는 감정. 증오로 시작했으나 끝은 애증인 관계. 날 왜 사랑했냐고 묻게 되는, 우리 계속 이래도 돼? 라는 물음으로 가득 채우게 만드는 이 끝없는 애증의 관계. 그 물음의 시초엔 송형준이 있고, 그 물음의 끝엔 강민희가 있다.

 

 

 

" 민희야, 네가 형준이 잘 좀 챙겨주렴 "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턱턱 목에 걸리는 음식과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의 식사는 보기보다 끔찍했다. 나름 그 곳에서의 재미는 강민희를 괴롭히는 것에 있었다. 발로 툭툭. 움찔거리며 귀가 붉어지는 강민희를 보는 게 이 좆같은 집에서 송형준의 유일한 낙이였다. 너 왜 빨개져? 킥킥대는 송형준 앞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일어나는 강민희였다.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강민희가 사라지자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테이블에서 더 이상 자리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형준은 가방을 챙겨 자리를 피하려는 강민희를 따라 나왔다. 몇 년째 삐걱대는 대문이 닫히자마자 민희는 형준을 벽에 몰아세웠다.

 

 

" 적당히 해 "

 

 

빌붙어 살고 있는 주제에. 살기어린 눈빛으로 형준을 쳐다봤다. 벽에 밀쳐진 형준은 벽돌에 쓸린 팔이 따가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파하는 티라도 내면, 강민희한테 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지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는 형준은 참았다. 팔이 쓸려 피가 나도 아닌 척 넘어갔다. 꽉 다문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뭘 적당히 하는데? 금방이라도 멱살 잡을 듯이 가까이 오던 민희가 싸해진 눈빛으로 대답했다. 좆같은 짓, 그만해.

 

 민희가 자리를 뜨고 한참 후에야 형준은 학교로 향했다.

 

 

 

" 너 왜 말 안 했어?  "

 

 네 동생. 반에 들어오자마자 급하게 부르더니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얘길 들은 민희는 무시했다. 누가 그런 얘기 했냐, 아니다, 맞다. 묻고 따지지도 않았다. 말 섞기 귀찮다는 듯 그런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책을 폈다. 그게 뭐 대수라고.

 

 

" 6반 송형준 "

 

 

 맞지? 아무렇지 않게 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던 건 앞에 송형준이라는 전제가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6반 송형준이 네 동생이라는 확신이 가정되어 있다면, 동생이 생겼다는 물음에 송형준이라는 전제가 숨어있었다면, 달라진다. 강민희의 행동이.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물음은 곧 사실이 될 테니. 순식간에 돌변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 그거 어떤 새끼가 알려줬어.

 

 

" 소문 다 났던데? "

 

 

 송형준을 먼저 만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딴 소문을 낼 사람은 송형준 밖에 없을 거라고, 평소에도 거슬리는 행동만 골라 하던 새끼니까 분명 그 애가 날 욕 먹이려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소문이 났을까. 형준이 뭐라고 얘기했을까. 송형준이 퍼뜨렸을 거라고 확신한 채, 형준을 찾아 나섰다.

 

 

 송형준을 만나게 되면 뭐라고 얘기 해야 되지?  무작정 네가 소문냈냐며 다그칠까, 먼저 얘기하게 기다려볼까. 아니면, 형이라고 말도 못 꺼내게 만들어버릴까. 민희는 송형준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6반에도 가보고, 혹여나 싶어 소각장도 가봤다. 찾아간 소각장 근처에선 희뿌연 담배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났다. 코너를 돌아 도착한 강민희 앞엔 김영찬네 패거리가 있었다.

 

 

 

" 동생 찾아? "

 

 송형준 맞나? 저번에 보니까 귀엽게 생겼던데. 귀여운 동생을 지금까지 왜 꽁꽁 숨겨놨어.

 

 무시하려고 했다. 어차피 송형준은 나랑 상관없는 존재고, 지금 내가 찾으려고 하는 건 소문의 원인 이 누구인지 물어보기 위함이니까. 그래서 송형준 따위 김영찬한테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난 또 송형준 그 새끼 뭣도 모르고 깝치는 줄 알았잖아. 이렇게 멋진 형이 구하러 와줄 건데, 그치? 머리론 상관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김영찬과 송형준이 이미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발걸음을 돌리던 강민희가 그대로 멈췄다.

 

 

“ 어디 있어. 송형준, 어디 있냐고 "

 

" 글쎄다. 아까 존나 처맞았으니까 보건실에 있으려나. "

 

 

 김영찬의 말을 듣자마자 소각장을 빠져나와 보건실로 뛰었다. 그냥,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소문의 원인이 송형준이라고 오해했던 게 미안해서인지, 아침에 벽으로 밀쳤던 게 미안해서인지, 나 때문에 맞고 혼자 있을 송형준이 불쌍해지기라도 했는지. 죽을 만큼 싫었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꼭,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학교를 반 바퀴쯤 돌았을 때, 반쯤 열려있는 보건실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앉아서 밴드를 붙이고 있는 송형준이 있다.

 

 

" 뭐냐 너? "

 

 보건실로 찾아온 민희에게 형준이 물었다. 여기 네가 왜 와? 라는 눈빛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혼자 울고 있을까봐. 오지랖인걸 알면서도 혼자서 슬퍼하고 있을까봐 보건실에 왔다. 형준의 얼굴을 보고서 그제야 깨달았다. 김영찬 개새끼가 공갈쳤다는 걸. 형준을 보러 여기까지 뛰어온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형준을 싫어하면서도 혼자서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여기까지 달려온 자신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나 때문에 맞은 줄 알고, 그래서 온 거야. 곤란해질 테니까'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켰다.

 

 형준은 능숙하게 보건실 서랍장에서 밴드를 꺼내 굳어버린 피를 닦고 밴드를 붙였다. 그리곤, 연고를 꺼내 아침에 꽉 깨무느라 상처 난 입술에 발랐다. 거울이 없어서 그런지 자꾸만 엇나가는 손길에 보다 못한 민희가 연고를 가져가 대신 발라주었다.

 

 

 

"야, 내가 할 수 있어 "

 

" 너 지금 제대로 바른 부분 하나도 없어 "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나와. 민희의 말에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아, 아퍼. 닿기만 해도 쓰라렸다. 민희는 발라준답시고 연고를 가져가놓고 발라주다가 아프다는 형준의 말에 상처를 꾸욱 눌렀다.

 

 

 야! 으윽, 흐 . 아무리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 시켜봐도 결국은 걱정되어 보러 온 게 맞았다. 자신이 보고 싶어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애꿎은 형준의 입술을 괴롭혔다. 민희는 아침에 식탁 밑에서 발장난 치던 형준을 생각했다. 너, 자꾸 나한테 이래도 돼? 괘씸했다. 나는 네가 이렇게 나한테 다가올 때마다 어떤 감정인지도 모른 채 다 받아들여야 하는데. 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게, 그게 네 죄야. 그리고 이게 네 벌이야. 형준이 앓는 소리를 낼 때마다 벌벌 떠는 손으로 세게 누르는 민희였다. 형준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입술 위를 지그시 누르고 있던 강민희의 손을 밀쳤다.

 

 

" 미쳤어? "

 

 강민희의 손길을 내친 뒤, 혼자 바르더니 꺼낸 연고들을 정리하는 형준이었다. 바삐 정리하던 손이 멈췄다. 강민희에 의해서. 정확히 말하면 강민희가 하는 말에 의해서, 형준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애들이 그러던데,

 

 

" 너랑 내가 형제래 "

 

 웃기지 않냐? 피가 다른데 어떻게 형제지? 그냥, 넌 우리 집에 얹혀사는 건데. 그치 형준아. 지는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송형준이 져야 할 때가 있다. 모든 면에서 강민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송형준이 굽히고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형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반박할 수 없고, 강민희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자신의 존재가 한껏 비참해져 저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해. "

 

아무 말도 안하니까 다 사실인 줄 알잖아. 좆같게. 나는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는데. 꾹 다문 입술을 열고 형준이 대답했다.

 

 

" 내가, 뭐라고 얘기하는데 "

 

 형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눈에 고인 눈물이 보건실 조명에 비춰 빛났다.

 

 

" 싫은데, 죽어버릴 만큼 나도 싫은데 "

 

맞는걸 어떡해. 형, 내가 네 동생인걸 어떡하냐고. 강민희가 제 형이라는걸 어쩌면 형준이 더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나이 18에 재혼을 하더니 몇 개월 가지도 않고 떠나버린 엄마를 두고 그 집에 얹혀사는 것도 돌아버릴 것 같은데, 형준을 더 미치게 만드는 건 내가 강민희 동생이라는 사실을 지워버리면 아예 없는 존재가 되어버릴까 두렵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형준을 괴롭혔다. 강민희에게 나쁜 짓을 하고, 못되게 굴었던 건 일종의 발악이었다. 나 여기 있다고, 저 스스로 존재감을 내기 위한 마지막 발악. 그 뜻을 죽어도 이해 못 할 민희가 미웠다. 집에서 한순간에 쫓겨날까봐,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어서 좆같지만 붙어있어야만 하는, 내 존재의 이유가 강민희 너여야만 하는 이런 감정. 안 느껴도 되잖아 넌.

 

 

" 짜증나 "

 

 형준은 제 처지를 알 리 없는 강민희가 미웠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강민희가 싫었다. 강민희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형준은 끝끝내 울음을 참았다. 눈가를 비비더니 그만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형준이 나가고 나서도 민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곳에 앉아 형준이 했던 말들을 곱씹어보았다. 죽어버릴 만큼 싫다고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말했던 형준이 떠올랐다. 강민희 앞에서 울지 않으려 그렇게 애썼지만, 민희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 큰 눈에 눈물이 담겨있다는걸. 그 눈물엔 상처가 가득해 보였다는 것도.

 

 

 

" 강민희 동생? "

 

 아까 강민희 눈깔 돌아서 너 찾으러 가던데 만났나보네. 반에 바로 들어가기 싫었던 형준은 학교를 뺑뺑 돌았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소각장엔 여전히 김영찬네가 있었다. 송형준은 뭣도 모르는데 깡다구는 있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덤볐다. 후회만 남을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

 

" 강민희 동생 아니라고 "

 

 가다말고 뒤돌아서 김영찬에게 답했다. 강민희 동생 아니라고. 뭣도 모르는데 깡다구 있는 송형준은 그렇게 대답했다. 김영찬은 형준 더러 지형이랑 말 하는 싸가지가 쏙 빼닮았다고 했다. 야, 형준아 너 진짜 동생 아니야? 쓸데없이 강민희 말을 들었다.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걸, 아니라고 우겼다. 강민희 처럼. 나랑 엮이기 싫어하는 걔처럼.

 

 

" 형준아, 소문 못 들었어? "

 

 너네 엄마 돈 존나 밝힌다며. 그래서 강민희 아빠랑 결혼한 거라고 전교에 소문 쫙 났어. 맞다, 지금 안계시지. 형준이 슬퍼서 어떡하냐. 엄마 없는 집에 좆같게 붙어있어야되고. 가늘게 뜬 눈으로 비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게 아니면···. 강민희랑 서로 좋아해? 그런 사이인거야 너네? 그래서 아까 강민희가 너 쳐 맞았단 소리에 눈깔 돌아서 뛰어간 거구나. 형준이가 엄마를 닮았네. 돈 좋아하고, 필요하면 사랑이든 몸이든 다 파는 거. 영찬의 말에 옆에 있던 애들이 줄줄이 따라 웃었다. 겨우 강민희 앞에서 눈물을 참아냈던 형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날 무너뜨리는 저 한마디에 형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형준은 자신이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강민희 집에서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형준은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기보다 멘탈이 약했고, 상처를 잘 받았다. 자각을 못했을 뿐이지 남들보다 더 했다. 꾸역꾸역 버티고 있던 게 아니었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언젠간 다 터져버리겠지 하면서 정도를 모르고 쌓아오고 있었다. 끝없는 상처들이 모여 이제야 터진 것뿐이다. 위로를 받아도 모자란데, 비웃음을 사고 있다. 빌어먹을 강민희 때문에. 내 존재의 이유 때문에, 형준은 울고 있다.

 

 

" 울어? "

 

 우니까 꼴린다. 형준아, 나도 돈 많은데. 형준은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김영찬 앞으로 다가 섰다. 쥐뿔도 없는 송형준이 덤볐다. 쥐뿔도 없으니까. 잃을 거 없으니까. 그래서 무작정 덤볐다.  김영찬 멱살 잡고 손이 닿는 대로 마구 휘둘렀다. 김영찬은 가만히 있다가 형준이 지쳐갈때 쯤에 발로 찼다. 형준은 발길질에 맞고 엎어졌다. 우르르 몰려와서 자신을 밟는 게 제 처지를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미치도록 싫었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나한테 맞는 게 억울해?  "

 

 네가 강민희 동생인걸 탓 해. 큰 눈에 맺혀있는 눈물, 맞느라 흐트러진 교복, 연고 발랐던 자리가 무색하게도 다시 터진 입술. 그리고 강민희. 이게 형준의 처지였다. 벗어날 수 없는 것들. 김영찬 패거리가 소각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그 곳에 머물렀다. 수업도 안 듣고 그곳에서 분을 삭혔다. 내가 왜, 왜 이런걸 당해야 하지? 강민희. 그래, 걔. 걔가 빌어먹게도 내 형이라서. 피 한 방울도 안 섞였는데 죽일 놈의 혈연이라서. 이게 내 운명인가 싶다가도 너무 비참해서 자꾸만 눈물이 새어나왔다.

 

 

 복도에서 강민희를 만났을 때 강민희는 말끔했다. 핏자국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상처 난 곳 하나 없이 말끔했다. 난 죄다 엉망인데, 그 애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어차피 망가지는 건 나뿐이었다. 아무리 발악을 하고 떼를 써도 망가지는 건 나 밖에 없다. 복도 끝에서 김영찬이 형준을 불렀다. 무시하고 갈 길 가려고 했지만 옆에 강민희가 있었다는 게 문제다. 걔만 없었어도, 내 터진 입술이. 아침에 긁힌 상처가, 그렇게 아프진 않았을 거다.

 

 

" 형준아, 꼴이 이게 뭐야. 맞은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

 

" 손대지마 "

 

 김영찬의 손길을 쳐냈다. 가까이 오지도 마. 씨이발 형준아, 네가 나한테 그럼 안 되지. 영찬이 형준에게 다가와 말 걸자, 강민희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너 때문이야. 때린 건 김영찬인데, 화는 강민희한테 났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혐오로 가득 찬 관계에서 할 수 있는 건 복수뿐이다. 아침에 다쳤던 거, 김영찬한테 처맞은거. 다 털어버릴거다. 내가 애초에 왜 이런 일을 당했는지 여기서 다 털어버릴 거다. 형준은 피터진 입술로, 한 맺힌 눈으로 강민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 형 "

 

 형이라는 말에 강민희 표정이 싸해졌다. 형준이 증오로 가득한 눈물을 참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얘기했다면 민희는 그 반대였다. 풀린 동공으로 형준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형이라고 한 거지?

 

 시선을 김영찬에게로 돌리며 형준이 쐐기를 박듯 다시 한 번 말했다.

 

 

" 형이라고. 강민희가 "

 

 됐지. 김영찬을 바라보며 말하는 건데도 어째서인지 강민희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 아무리 네가 부정해봤자, 우린 좆같은 혈연관계야. 울지 않으려 똑바로 뜬 눈이 그렇게 말했다.

 

 형준의 발언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끌렸다. 송형준에게로. 그리고, 송형준을 바라보고 있는 강민희에게로. 온갖 곳을 다 맞아 절뚝거리며 복도를 빠져나가는 송형준을 따라갔다. 무작정 따라가 불렀다.

 

 

" 너 어디가 "

 

" 놔.  "

 

 놓으라는 형준의 말에 붙잡고 있던 팔목을 내어주었다. 그러자 형준은 또, 그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 내 눈앞에서 사라져주라 형 "

 

 따라오지 마. 그 큰 눈에 담긴 슬픔이 자꾸만 강민희 심장에 파고들었다. 내 인생에 끼어든 건 너면서, 송형준은 항상 나에게 책임을 묻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형준의 좌우명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였다. 여전히 좌우명을 잘 지키며 살고 있었다. 조금은 잘못된 방법으로 말이다. 형준은 김영찬한테 맞고 돌아온 날이면 집에서 강민희의 심기를 살살 건드렸다. '그래, 이게 다 너 때문인데. ' 라며 정당화 시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거같아서.

 

 

 강민희는 밥을 먹지 않았다. 송형준과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지 않았다. 강민희는 송형준이 그 짓거리 하는 거 못 견뎌 했을 뿐더러 송형준한테 꼴리는 자신이 싫어서 피해 다녔다. 그렇게 며칠을 피해 다녔는데. 죽일 놈의 혈연 덕분에 더 이상 피할 수도 없었다. 저녁에 가족 외식이 있는 날이었다. 학교 사람들은 송형준이 강민희의 배다른 동생인걸 안다. 업계에도 그게 알려지면 사업에 타격이 클 거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송형준을 숨겨둔 쌍둥이 둘째 아들이라고 세상에 밝혔다. 강형준. 이름부터 좆같았다. 이걸 믿는 바보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다들 멍청한 건지, 멍청한 척 하는 건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가족이 모두 업계에 진출해 있을 때 재산 경쟁은 심해진다. 세 남매 중 첫째인 아버지는 심한 시기와 질투, 견제를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경영권 위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선, 아버지보다도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더 많았다.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경쟁상대에서 끌어내리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버텨내야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 새로 나타난 송형준은 상당한 골칫거리가 된다.

 

 

" 이름이 형준이라고? "

 

 네. 송형준은 아버지의 교육대로 곧 잘 대답했다. 기계같이 뱉어내는 대답에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지 못하자 묵묵히 식사만 하는 사람들을 보니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새로 등장한 불청객 송형준으로부터의 관심이 사라지자 형준은 숨이 좀 트이는지 그제야 바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형준은 화장실에 간다며 숨통 조이는 그 곳을 빠져나왔다. 화장실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스피커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 그래, 그 형준인가 뭔가 하는 애. "

 

" 물고 늘어질 거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봐 "

 

" 강회장이 숨겨 놓고 있었다며 "

 

 

 캥기는게 있으니까 숨겼겠지. 뒷조사 하고 나한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내. 형준은 화장실 뒤 벽에서 통화 내용을 들었다. 몰래 훔쳐들으려던건 아니었는데.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대화를 듣던 형준은 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원래 살던 삶을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미련하게도 이곳에 붙어있는것 말곤 답이 없다고. 돌아갈 집이 없고, 돌아갈 힘이 없으니 정말 지옥 같지만 여기 계속 있는 수밖에 없다고.

 

 이곳에 있으니 강민희와 나 모두 불쌍해졌다. 그저 어른들의 놀이에 놀아나는 장난감 같았다. 그새 연민이라도 생긴 건지 오늘만큼은 강민희가 괜찮았다. 괜찮아 보였다.

 

 

" 민희는, 아직도 야구 배우니? "

 

 

 강민희는 운동을 잘했다. 달리기, 축구, 농구.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 잘했다. 그 중에서 가장 잘하는 건 야구였다. 학교 야구부 1번 타자 강민희. 1번 타자 강민희에게는 꿈이 있다. 머리 터질거같은 집안싸움에서 손 떼고, 야구 선수 하는 것. 그게 10년째 빌고 있는 강민희 소원이었다.

 

 

" 네 "

 

" 야구는 취미로 하는 거지? 이제 슬슬 회사 물려받을 준비 해야지 "

 

 

 걱정해주는듯 하면서도 날이 선 말투에 식사 자리가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제가 경영권 안 물려 받는 게 더 좋잖아요. 말 하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자리에 폭탄을 던지는 것과도 같았기에. 끔찍했던 식사시간이  끝나고 모두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앞에서 송형준이 그랬다. 너도 참 불쌍한 인생이라고. 근데 형준아, 불쌍한 건 너 아냐?

 

 

 강민희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손끝하나 잘못 건드리면 파편처럼 다 흩어져버릴 것 같은 그 집에서, 정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집에서 자라오면서도 강민희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형준의 말에 불편한 내색을 내보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나중엔 결국 야구 말고 회사를 물려받고 있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송형준이 보기엔 아니었나보다. 가망 없는 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운명, 그딴거 쯤으로 보였나보다. 그러니 내 인생이 불쌍하다며 날 바라보며 얘기한 거겠지. 동병상련. 송형준은 강민희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민희는 곧장 형준의 방으로 가서 묻고 싶었다. 난 너랑 달라. 너처럼 비극으로 가득한 삶. 그딴거 내 인생엔 없어.

 

 

 생각은 곧 행동이 됐다. 강민희는 송형준의 방으로 갔다. 바로 옆방. 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송형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강민희는 송형준을 밀쳤다.

 

 

" 뭐하는거야 "

 

" 불쌍해? "

 

" 이게 뭐하는···. "

 

 

형준아, 나는 한 번도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네가 뭔데···. 네까짓 게 뭔데 나더러 불쌍하대.

 

 형준은 강민희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강민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피도 안 섞였는데 혈연이라고 제 옆에서 형제 흉내를 내는 것도 같잖았는데, 이젠 위로까지 하고 있다. 너한테 이런 거 받을 처지 아닌 거 알잖아. 누가 누굴 걱정해.

 

 

" 형준아, 너나 잘해 "

 

 

 

 

 그 날은 합동 체육 수업 이였다. 2반과 6반. 공교롭게도 강민희랑 송형준이 있는 반이었다. 반끼리 축구 시합을 하기로 했다. 체육시간 바로 전에 불려가서 또 맞고 온 송형준은 축구 시합에 참여할 수 없었다. 운동장 계단에 걸터앉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진 계단에 앉아 눈으로 강민희를 좇았다. 형준의 시선은 강민희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그 애를 바라보며 형준은 어제 일을 생각했다. 불쌍해? 라고 말하던 강민희의 음성이 귀에 맴돌았다. 불쌍해. 너도 나도. 강민희, 우리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미칠거같으면 어떡해?

 

 민희는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니면서 종종 아이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송형준은 그 곳과 조금 떨어진 그늘진 곳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 곳에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맞 부딪치는 시선 속에 엉켜버린 이야기들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되었다. 네 인생도 참 불쌍한 것 같아. 네까짓 게 뭔데 나더러 불쌍하대. 그 두 마디가 강민희와 송형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형준은 체육 창고에 공을 가져다 놓으라는 체육 쌤의 심부름에 별다른 저항 없이 체육 창고로 향했다. 맞은 곳이 욱신거려 절뚝거리며 체육 창고로 향했다.

 

 힘겹게 도착한 체육창고엔 누군가 이미 들어와있었다. 강민희였다. 강민희는 반 아이들이 갖고 놀던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강민희의 뒤를 지나쳐 공 놓는 곳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형준과 시선이 맞 닿은 건 한 순간이었다. 형준은 체육시간에 강민희를 바라보며 삼켜냈던 말들을 하나둘씩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 너는 나랑 다른 거 같지? 나랑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

 

 

 

두 번째.

 

" 착각하지 마.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

 

 

세 번째.

 

" 우리 인생이 너무 불쌍해. "

 

 

 깊은 마음 속 담아두었던 말을 끝낸 형준이 민희를 바라봤다. 강민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강민희에게 할 말을 전한 뒤, 옆에서 공을 정리하는 형준이었다.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주제에 날 동정하고 있어. 그것도 네가.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네가, 나보다 더 불행하면서.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면서 대체 왜, 날 동정해 네가. 민희는 뒤 돌아 형준의 멱살을 잡았다. 너, 다시 말해.

 

 

" 불쌍하다고 네 인생, 그리고 내 인생 "

 

 강민희는 부정하고 싶어 했다. 너랑 나랑 같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송형준과 강민희는 다르다는걸. 조금은 잘못된 방식 이였지만,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송형준이 내 동생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어 했다.

 

 

 강민희 앞에서 두 발로 버티고 있던 형준은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강민희가 형준을 향해 다가오더니 곧장 멱살을 잡곤 끌어올렸다. 형준이 먼저 강민희를 때렸다. 너때문에 내가 얼마나, 얼마나 맞았는지 알아? 서러움이 담긴 그 조그만 주먹으로 강민희를 쳤다. 강민희 입술에서 작게 피가 새어나왔다. 주먹으로 맞은 강민희는 송형준을 때리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었던 강민희는 잘못된 방식으로 형준을 부정했다. 피터진 입술을 그대로 둔 채, 송형준에게 가서 키스했다. 형준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자신과 똑같이 피가 나오게끔.

 

 

 내 존재의 이유가 너인데, 나를 부정하려는 듯 한 행동에 이상한 감정을 느낀 형준 이었다. 둘은 같은 자리에 다른 피를 달고 서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다. 시선이 맞닿으면 몸이 섞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둘은 한참을 바라보다, 서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있는 상태로 키스했다. 상처 난 부위를 핥아주고, 몸을 부딪쳤다. 욱신거리는 다리. 아려오는 입술. 흐트러진 교복. 둘은 그 곳에서 뒹굴었다. 마음 한켠 어딘가에 담아두었던 욕정을 그 곳에서 풀었다.

 

엉망이 된 교복과 튼 입술. 둘은 반으로 가지 않고 보건실로 향했다. 상처 난 부위에 약을 발랐다. 강민희는 송형준의 상처 난 입술에 약을 발라주려 다가갔다. 가다가 잘못해서 송형준의 다리를 모르고 쳤는데, 송형준이 맞은 거에 비해 너무 아파하는 게 이상했다. 강민희는 송형준의 다리를 걷어 올렸다. 강민희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깐 정신없어서 못 봤었는데. 송형준 다리엔 벌써 푸른 멍이 여러 개였고 어설프게 붙여져있는 반창고가 언뜻 봐도 많아보였다. 오늘도 불려갔다 온 건지 아직 피가 나는 곳도 있었다. 강민희는 송형준의 옷을 들춰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등도 마찬가지였다.

 

 

" 김영찬이지 "

 

" ... 뭐가 "

 

" 맞은 거 "

 

 

 맞으면, 네가 뭐 어쩔 건데. 형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강민희는 확신했다.

 

 

" 나 때문이야? "

 

"···.   "

 

" 나 때문이냐고 "

 

 

 김영찬이 때린 거 맞아. 너때문이래. 네가 김영찬 건드릴수록 내가 더 아파. 나만 더 아파져. 그래서 형준은 말 할 수 없었다. 너 때문이다, 김영찬이 그랬다고 말 할 수 없었다. 망가지는 건 오직 형준 뿐이었으니까. 약 상자 쪽으로 향하더니 약을 한 움큼 들고 온 강민희가 말했다.

 

 

" 나 때문에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마 "

 

" ... 안 맞아 "

 

 안 맞기는. 강민희는 덕지덕지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리곤 상처 부위를 바라보다 물었다. 저번에 그날, 그 뒤로 계속 불려 다녔다는 거네. 나 때문에.

 

" 왜 말을 안 해. 그 새끼가 그랬으면 그랬다고 나한테 말해도 됐잖아 "

 

 

 형준은 아까부터 목에 걸리는 말이 있었다.

 

 

" 너한테 말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잖아  "

 

 

 네 도움 안 받아. 안 받을 거야. 형준은 민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잖아.

 

 

" 어차피 넌 나 못 도와주잖아 "

 

 

 형준의 말이 맞았다. 강민희는 송형준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사실은 강민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형준의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네.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

 

 

 

 

 형준은 자리에 앉아 창문너머로 보이는 강민희를 구경했다. 점심시간이라 야구 연습하는 강민희를 바라봤다. 강민희는 야구 하는 동안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운동장을 뛰놀며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나 보이는 강민희와 달리 형준은 슬퍼했다. 저렇게 좋아하고 잘 해도, 결국엔 하지 못 할걸 알았기 때문에.

 

 

 예비 종이 울리고 나서 운동장에서 흩어지는 아이들 속 강민희를 찾았다. 강민희와 누군가가 부딪쳤다. 강민희는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듯 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무어라 얘기하더니, 이내 강민희를 밀쳤다. 멀리서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형준은 민희가 그냥 지나쳐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이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창문에 붙어 구경했다. 아이들 때문에 형준의 자리에선 더 이상 강민희가 보이지 않았다.

 

 

 

" 뭐야 김영찬이야? "

 

" 김영찬이랑 강민희 둘이 싸우는데? "

 

" 강민희가 김영찬 존나 때리는데 "

 

 

 김영찬 왜 맞고만 있음? 몰라. 근데 강민희 개 무섭다. 존나 때리는데? 창문에 붙어 밖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얘기할 때마다 형준은 온 신경이 그 쪽으로 향했다. 형준은 강민희가 그냥 지나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강민희는 김영찬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찬은 가만히 그걸 맞고만 있었다. 형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틈을 비집고 창밖을 보았다. 운동장 한 가운데 얽혀있는 강민희와 김영찬. 김영찬 위에 올라타 미친 듯이 패고 있는 강민희.

 

 형준은 수업시간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아까 봤던 장면들이 계속 아른거려서. 강민희가 왜 그랬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집중이 안됐다. 쉬는 시간이 됐는데도 형준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강민희한테 가서 무슨 생각으로 김영찬을 그렇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지 못 했다. 차마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아서, 반에 계속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미친. 애들아 강민희 잘하면 퇴학이래. "

 

 시끄럽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교탁 앞에서 모두를 주목시킨 한 아이가 말했다. 방금 교무실 갔다 왔는데 쌤이 강민희한테 지금 이 상태로는 퇴학이라고 말했다며 애들에게 알려주었다.

 

 

강민희, 너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점심시간 이었다. 평소처럼 야구를 끝내고 반에 가려던 강민희 앞으로 김영찬이 다가왔다. 지나쳐가면서 툭 치고가는 김영찬에 별말 않고 가려던 강민희였다. 김영찬의 한 마디가 강민희를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 학교에서 씹뜨면 무슨 기분이야? "

 

 

 의문문의 형태였지만 물어보는 문장은 아니었다. 확신에 차있는, 비꼬는 문장. 김영찬의 말에 강민희는 뒤돌아 김영찬을 바라봤다. 강민희가 뒤돌아보자 잘 걸렸다 싶은 김영찬은 강민희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 저번에 눈깔 돌아간 이유가 송형준 때문일 거라고 대충 예상은 했었는데···. "

 

 

 강민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김영찬이 어떤 얘기를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아서. 저번과 같은 이야긴데, 어쩐지 이번엔 꼭 확신에 차있는 것 같아서.

 

 

" 진짜일 줄은 몰랐지. "

 

 

 그리고 학교에서 이런 짓거리 할 줄도 몰랐는데. 김영찬은 밀쳐지는 강민희 앞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민 화면 속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낡은 체육 창고 속 강민희와 송형준. 둘이 그 곳에서 하던 짓이 적나라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 민희야, 네 동생 나한테도 좀 빌려주라. 내가 잘 쓰고 돌려줄게. "

 

 

 혼란스러워 가만히 김영찬의 말을 듣고 있던 강민희가 김영찬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영찬을 밀쳤다. 그리곤 정말, 눈 돌아간 사람처럼. 눈에 뵈는 거 없는 사람처럼 김영찬을 팼다. 어느새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선생님의지도하에 둘은 교무실로 끌려갔다.

 

 

 " 강민희. 이 자식아 너 왜 그랬어. 여태 사고 한 번 안치던 놈이 "

 

 

 넌 잘하면 퇴학이야 인마. 같이 불려갔던 김영찬은 병원으로 돌려보내졌다. 머리에 피가 흘러내리고 눈 두덩 이는 이미 붉게 부풀어있는 김영찬의 상태를 보며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차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교무실엔 강민희 혼자 남겨져 있었다.

 

 

 좀 사는 아이들만 모여 있는 이 학교에선 누군가를 패고 쌈박질하는게 흔한 일이었다. 다들 눈 감고 쉬쉬하며 지내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이번엔 스케일이 너무 컸다. 지켜 본 애들도 많았고, 사고 한 번 안치던 강민희가 누군가를 저렇게 만들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강민희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그 관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 강민희가 김영찬 때린 거 송형준 때문이라는데?"

 

 

 한 아이의 말에 반 아이들 시선이 모두 송형준에게로 쏠렸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나도 몰라. 형준의 속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형준에게 물었다. 너 둘이 왜 싸웠는지 알아? 몰라. 형준의 답변이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금방 시선을 거두는 아이들이었다. 점차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화제에 형준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료한 일상 중에 씹을 만한 거리라도 생겼으면 하는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바랬다. 그래서 형준에게 관심 없는 듯 보였지만 한편으론 기대하고 있었다. 강민희나 김영찬이 송형준을 보러오지 않을까 하고.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한건 강민희였다. 강민희는 교무실에서 몇 시간동안 이나 잡혀있었다. 이제 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에 교무실을 빠져나오자, 복도에 자기를 향해 쏠린 많은 시선들이 있었다. 수근거림. 힐끗 쳐다보기. 다 무시한 채 강민희는 송형준에게 갔다. 송형준 반으로 가서 무작정 끌고 나왔다. 지금 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 나 이제 학교 못 나올지도 몰라 "

 

" .. 들었어. "

 

" 내가 널 도와줄 수 없다고 했지. 틀렸어. 난 너 도와줄 거야. 좆같은 네 인생. 그리고 내 인생. 다 바꿀 거야. "

 

" ···. "

 

" 김영찬. 그 새끼 이제 뵈는 거 없이 너 더 괴롭힐 거야. 걔가 뭐라고 협박하면, 나한테 말해 "

 

" ···.  "

 

" 형이라며 네가. 그 형 노릇 내가 해줄 테니까 "

 

 

 그 새끼 말 듣지도 말고, 믿지도 마. 강민희는 형준의 어깨를 붙잡곤 몰아치듯이 말했다. 형준은 강민희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벌벌 떨고 있는 강민희 손을 잡아줬다. 예전엔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죽기보다 싫었는데, 지금은 아냐.

 

 

" 아무 일도 없을 거고,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

 

 

 약속할게. 너 없는 동안 잘 살고 있겠다고, 어디 가서 안 맞고, 협박 안 당하면서 잘 있겠다고. 약속할게 내가.

 

 

 강민희는 그 후로 몇 번이고 더 교무실에 불려갔다. 가서 꾸중 듣고 반성문 쓰고 청소하길 반복했다. 김영찬이 그동안 한 짓거리들이 있어서 강민희는 겨우 퇴학을 면할 수 있었다. 대신, 정학 3주. 거의 한 달 동안 학교에 나올 수 없었다. 강민희가 좋아하는 야구도, 송형준도. 마주 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졌다. 집에서 쫓아낸다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외출금지를 당했다. 강민희는 3주동안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왜 그랬냐며, 뭐 때문에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냐며 다그쳤다. 아무래도 내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서, 사춘기라서. 그래서 친구랑 싸웠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아버지, 저 사춘기 아니에요. 학업 스트레스 그런 거 없어요. 제가 왜 그랬냐면,

 

 

왜 그랬냐면,

 

송형준 때문에요.

 

저 애가 아파하는 건 모두 나 때문인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그랬어요. 저 애가 아픈 건 전부 내 탓이니까. 제가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송형준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그 애가 이상한 소문에 휩쓸리지 않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오로지 혼자 느끼지 않게.

 

 

형준에게 전화가 왔었다. 민희는 전화가 끊기기라도 할까봐 급하게 받았다. 수신확인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강민희가 송형준을 몇 번이고 부른 뒤에, 그제야 형준이 입을 열었다.

 

 

" 네가 말했던 게 이거야? "

 

" 너 지금 어디야 "

 

" 민희야, 나 너무 힘들어. 너한테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어디 가서 안 맞고 잘 살고 있겠다고 얘기했는데.. "

 

" ···.  "

 

" .. 약속 못 지킬거같아. "

 

 

 미안. 미안 강민희. 울기라도 한 건지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네가 뭐가 미안한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미안해. 강민희는 형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왜인지 집에도 안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외출금지 그딴거 다 집어치우고 지금 강민희는 송형준을 보러 가야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정말, 혹여나, 나쁜 마음먹고 죽기라도 할까봐. 그래서 겁이 났다. 내 존재의 이유도 너인데. 내가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것도 너때문인데. 네가 만약 죽기라도 하면 난 어떡해? 네가 없는 곳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얼마 전만 해도 네가 무지하게 싫었는데, 지금은 네가 없으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모르겠어. 미래가 깜깜해. 생각하기도 싫어.

 

 

 어디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려했다. 형준에게 다시 전화했지만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급히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 민희를 보고 아버지는 어디 나가냐며 타박했다. 하필이면 이때 집에 다시 돌아오셨다. 민희는 대충 편의점에 갔다 온다며 둘러댔다.

 

 

" 송형준. 그 자식 때문이냐? "

 

 

 너 요새 이상한 짓 하는 거. 형준이 때문이냐고. 강민희와 송형준의 통화를 듣기라도 한 건지 민희에게 추궁했다. 아버지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 거슬리는 행동 자제해 "

 

" ... 송형준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

 

" 사춘기 핑계 대면서 이러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

 

 

송형준 때문에 아니니까 그 애는 건들지 마요. 아버지가 망쳐놓은건 나 하나로도 족하잖아요.

 

 

 

 무작정 집을 나와 온 동네를 돌아다닌 강민희는 집 근처 놀이터에서 송형준을 발견했다.

 

 

" 송형준 "

 

 형준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앉아있는 송형준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야, 너 그렇게 말하고 끊어버리면 어떡해. 나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너 사라질까봐. 연락 뚝 끊고 어디로 가버릴까봐.

 

 

" 나 어디 안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억울해서라도 못 떠나지 "

 

" .. 전화는. 전화 왜 했어? 김영찬이 또 때렸어? "

 

" 민희야. 우리 만나면 안됐었나 봐. 그 날. 체육창고에 내가 가지 말았어야 했나봐. 내가 널..  좋아하면 안됐었나 봐. 결국에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처음부터 시작해버린 나도. 너도.. 우리 그냥, 계속 서로를 싫어하면서. 일말의 감정 따위 생기지 않게. 그냥 그렇게, 그렇게 내버려둘걸 그랬나봐. "

 

" ···. "

 

" 우리한테 사랑같은거...사치야."

 

 

 분수에 지나쳐. 너랑 나한테 너무 과분해. 그래, 따지고 보면 너랑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길바닥에 나앉을 뻔 한 내가 지금 여기까지 버틸 수 있는 것도 너무 과분해 나한테는.

 

 

" .. 봤구나. "

 

".. 너 때문에 내가 아파서 널 싫어했는데, 이젠 그 아픔조차 견녀낼 만큼 네가 좋아. "

 

 

 그런데, 있잖아 민희야. 널 싫어했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살 정도로 지금 너무 좋은데. 근데, 가끔은. 아주 가끔은 조금 무서워.

 

 

" 결국에 또 혼자 남겨지는 건 나일 테니까. 그래서 혼자 그 아픈 시간들을 다 견뎌내야만 할 테니까. 너 없이 오로지 혼자서. "

 

" ... "

 

" 나는 그걸 견뎌낼 자신이 없어. 네가 너무너무 좋은데.. 못하겠어. 못 버티겠어. 장담을 할 수가 없어. "

 

" 왜 혼자야. 내가 네 옆에 계속 있을 거야 "

 

 

 걱정하지 마. 민희는 울고 있는 형준을 안아주며 말했다. 울지 마. 울지 마, 형준아. 우리 인생에 사랑마저도 없으면 너무 비참하니까.

 

 

" 그래서, 김영찬이 너한테 그 영상 보여줬다는 거지? "

 

" .. 응 "

 

" ..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

 

 

 둘은 그곳에서 한참 동안이나 있었다.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져도 오늘만큼은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거라는 불안감이 계속 들었기에. 둘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빌고 있었다.  

 

 

 

-

 

 

 형준과 민희는 집으로 불려왔다. 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불려왔다. 형준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된 짐들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끌려가다시피 나갔다. 민희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지 말라고 온 몸으로 막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형준이가 어딘가로 끌려가고, 민희는 회사로 불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민희에게 던졌다. 맞고 떨어진 서류 봉투를 주워들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송형준. 체육창고. 서류 봉투 안에는 사진이 가득했다. 형준과 민희가 같이 있는 사진. 서류를 들고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 설명해 "

 

" ···. "

 

 

 

  말 할 수 없었다. 아버지, 제가 형준이를 좋아해요. 형준이도 저를 좋아한대요. 어차피 우리 피 한 방울도 안 섞였잖아요. 그냥, 사랑하게 해주면 안돼요?

 

 

" 그 놈 때문 이였구나 결국은 "

 

 선택해라. 야구고 뭐고 다 포기하고 미국가. 가서 경영 차근차근 배워서 자리 물려받아라. 여기 계속 남아있겠다면 형준이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민희는 머리가 터져버릴것 같았다. 집을 나서 형준이 현재 머물고 있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가서 형준을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나 정말이지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나도. 민희는 형준의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형준아, 너라면 어떡할래?

 

 

 

" 형준아, 내 10년간 소원이 뭐였는줄 알아? 좆같은 집안싸움에서 빠지고 야구선수 하는 거. 나 그거 하나 보고 버텨왔어. 여기까지 왔는데. 근데, 아버지가 선택하래. 너랑 야구. 둘 중에 하나 선택하래 나더러. 내가, 내가 이걸 어떻게 골라. 어떻게 할까 형준아. "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

 

 

" 민희야, 야구 해. 나에 대한 기억은 싹 다 잊어버리고, 처음에. 서로 싫어했던 기억만 남기고. 야구해. 깔끔하게 그렇게 해. 나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으니까, 네 10년 소원. 그거 해. 나 말고.

 

나한테 네 10년을 투자하기엔 너무 아깝잖아 "

 

 

-

 

 

" .. 갈게요 "

 

 

 강민희는 어리석게도 송형준을 택했다. 내가 네 곁에 있어주기로 했잖아. 내 10년을 너한테 걸 만큼 좋아. 난. 형준을 지켜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언제 다시 한국에 돌아올지 몰라도, 그래도 괜찮았다.

 

 티켓을 한 장 건네셨다. 당장 몇 시간 뒤에 출국인 티켓이었다. 형준 이에게 인사 한 번도 못해본 채로 떠났다.

 

 

 

열여덟. 그때의 우린 미성숙 했다. 사랑을 깨닫는 방식도, 전하는 방식도 온전하지 못했다. 불행한 우리의 인생 속에 밝은 미래 따윈 없었다. 비참한 나날 뿐이었던 내게 잠시 동안의 희망을 주었던 너와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됐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조차 알 턱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괜찮았다.

 

사랑했던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았기에.

 

그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거니까.

 

 

-

 

 

 나의 열여덟은 송형준이 전부였다. 열아홉도, 스물도, 모두 송형준이 나의 전부일 것이다. 찬란했고, 찬란했을 내 모든 순간들을 나의 열여덟. 송형준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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