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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W.몽스

 

 

 

 

 

 

 

 

 

 

  안녕, 형준아. 가을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발길을 잡았다.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익숙함에 억지로 걸음을 돌렸다. 얼굴에 가짜 웃음을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안녕, 민희야. 검은 코트를 입은 강민희는 어딘가 낯이 익은 여자와 팔짱을 낀 채 웃고 있었다. 쟤는 강민희 여자친구인가. 그가 누구와 팔짱을 끼고 다닌다고 해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동물의 본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호기심이 질문을 툭툭 던졌다.

 

 

 

 

 

"옆에는 여자친구야?"

 

"응. 이쪽은 김희주, 우리 학교 사학과 2학년이야. 너랑은 완전 초면인가?"

 

 

 

 

 

  아, 그 얼굴이 얼핏 기억이 났다. 강민희와 같은 동아리를 하는 이름 모를 여자애. 강민희의 인스타에 몇 번 올라왔던 동아리 단체 사진 속에서 봤던 게 떠올랐다. 여자는 꼭 강아지같이 커다랗고 새카만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아마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오기를 기대한 모양인지, 희주인지 뭔지 하는 애는 강민희의 팔에 팔짱을 꼭 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내가 꿈쩍도 할 마음이 없다는 걸 눈치챈 그녀는 성격 좋게도 내 앞에 먼저 제 손을 내밀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동안 그 어떤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렇게 얻은 결과에 나는 만족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대학교의 간판 학과.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보낸 고등학교 시절의 전부는 대학이었기에 나는 뿌듯했다. 정말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한 학기 만에 휴학 신청을 했다.

 

  이유는 강민희. 강민희와는 같은 과였고, 친하게 지냈다. 워낙 강민희가 남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던 탓도 있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그와 친했다. 그러나 나는 강민희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강민희는 이상했다. 허나 그에 대한 소문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강민희에 대한 소문은 좋은 쪽에 속했다. 잘생겼고, 학점도 괜찮고, 성격도 좋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나 뭐라나. 그저 강민희의 겉모습만 아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였을 뿐이었지만. 그의 성격에 크게 모난 부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다정한 참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부분에서 세심한 배려를 하는 모습이 좋았다. 내가 호감이 있다고 말한 여자애들만 골라서 사귀는 악질적인 습관까지도 그냥 넘길 수 있을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강민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새끼를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강민희랑 어울린 내가 병신이었지, 뭐.

 

 

 

 

 

"만나서 반가워요."

 

"앞으로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그래요. 아, 그리고 내가 선배니까 말 편하게 해도 괜찮죠?"

 

"네, 그럼요."

 

 

 

 

 

  희주는 붙임성이 좋은 편인지 처음 본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자신의 남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악수했다. 강민희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나와 희주가 잡고 있던 손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재수 없는 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강민희에게 엿을 먹이지 못해 혈안이 된 상태였다. "아, 그러고 보니." 희주와 악수를 하기 위해 잡은 손을 놓자마자 고개를 들고 강민희를 쳐다봤다. 까맣게 물들은 머리가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항상 얼굴에 가득한 거짓 웃음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무리 봐도 재수 없는 새끼.

 

 

 

 

 

"너 민경인가 누군가랑 사귀지 않았나? 걔는 어떻게 됐어?"

 

"민경이는 작년이야, 형준아. 그리고 그때 이후로 누구 사귄 적 없어."

 

 

 

 

 

  근데 다 기억나나 봐? 네가 좋아하던 애였잖아. 싱긋 웃음 지은 강민희가 허리를 숙이고 내 귀에만 들리게 작게 속삭였다. 강민희는 태연하게 웃는 것을 잘했다. 재수 없는 새끼.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내 말은 전혀 강민희에게 타격이 가지 않아 보였다. 입술을 아주 세게 깨물었다. 갈라진 틈 사이에서 비릿한 맛이 올라왔다. 그의 팔짱을 꼭 끼고 있는 희주 역시 강민희의 전 애인 이야기 따위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요즘 커플들은 다 저런 걸까, 아니면 그냥 쿨한 척을 하는 걸까. 둘의 얼굴 어디에도 언짢은 기색 하나 없었다. 아니,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둘 다 이상한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저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나는 가방을 고쳐 매고 대충 강민희에게 인사를 했다. 나 수업 있어서 그만 갈게. 강민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기계 같은 웃음이었다. 사람다운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웃음이 싫었다. 나는 역시나, 여전히 강민희가 싫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강민희의 애인이 바뀌었다. 희주는 강민희와 헤어지고 난 뒤에도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주만큼 강민희에게 잘 어울리는 이상한 애가 있을까 싶었다. 하여튼 새로 사귄 여자친구는 옆 대학교의 3학년 누구라고 했는데, 이름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여튼 강민희는 뻔뻔하게도 길을 걷던 나를 붙잡고서는 제 여자친구를 소개했다.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나는 싫은 티를 내지 않고 인사를 하고 악수를 했다.

 

 

 

 

 

"민희야, 근데 희주는 어떻게 된 거야?"

 

 

 

 

 

  내 물음에 여자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강민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걔랑은 헤어졌어, 재미가 없어서. 돌아온 강민희의 대답이 웃기지도 않았다. 나는 아직 강민희에게 엿을 먹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였기에 활짝 웃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왜, 희주 착하고 좋던데."

 

"희주가 마음에 들었어, 형준아?"

 

"지랄 마."

 

 

 

 

 

  나는 강민희의 여자친구에게 웃어 보이고 급하게 그의 앞을 벗어났다. 희주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거짓말처럼 변하던 강민희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상한 새끼. 별 또라이 같은 새끼.

 

 

 

 

 

 

 

  앞으로 우리 수학교육과를 이끌어 갈 인재들을 위해 건배! 과대 선배의 뻔하고도 흔한 건배사를 들으며 소주잔을 부딪쳤다. 뒤이어 소주가 목을 타고 꿀꺽거리며 내려가는 청량한 소리와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싸구려 어묵탕과 감자튀김이 올라와 있는 테이블 위에 비운 잔을 툭 올려놓았다. 입에 감도는 알콜의 역한 맛이 싫어 감자튀김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물이 가득 담긴 스테인리스 컵을 건넸다. 이거 마셔요. 다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건넨 컵을 비웠다.

 

 

 

 

 

"와, 잘생겼네."

 

"네?"

 

"아, 죄송해요."

 

 

 

 

 

  부끄럽게도 저게 내가 강민희에게 처음 한 말이었다. 평소에 머릿속에서만 생각해야 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입밖으로 내뱉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예고도 없이 내 앞에 훅 들어온 강민희의 얼굴을 보자마자 조금 감탄을 했다. 아이돌 해도 되겠네. 이번에는 겨우 이성을 잡고 말을 꾹꾹 씹었다. 강민희는 수줍은 미소를 얼굴에 살풋 띄었다.

 

 

 

 

 

"저는 강민희라고 해요. 오티 때 보고 말 걸고 싶었는데 이제 인사하네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송형준이고, 저 20살이니까 말 편하게 하세요."

 

"나도 20살이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형준아."

 

 

 

 

 

  강민희는 대뜸 제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를 입력하게 하더니 이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먼저 해왔다. 맞팔하고 내 번호도 저장해줘. 잘생긴 얼굴로 웃는 탓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위 말하는 '인싸'의 표본이었다. 그는 나뿐만이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모두와도 금방 친해졌다. 그렇지만 그가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눈 사람은 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은근히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인기 많고 잘생긴 친구가 생겼다는 건 자랑스럽게 여겨도 되는 부분 아닌가.

 

  술자리도, 새로 사귄 사람들도, 시끄러운 최신 유행곡들도, 모두가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전부 처음 겪는 것이었기에 신기하고 즐거웠다. 이래서 어른들이 술자리를 즐긴다고 하는구나. 선배들이 건네는 술 한 잔, 동기들과 마시는 술 한 잔, 기분이 좋아서 마시는 술 한 잔이 전부 쌓이고 쌓여 눈앞을 흐릿하게 막았다. 형준아, 너 괜찮아? 어깨를 토닥거리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옆에 앉은 강민희인지 지방에 계신 아버지인지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취한 상태였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갈래."

 

"같이 갈래?"

 

"응."

 

 

 

 

 

  분명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민희는 내 팔을 꼭 잡고 놓지를 않았다. 술에 취한 나는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나 진짜 괜찮아. 그때 날 보던 강민희의 얼굴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득하게 일렁거리던 기억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곳은 자취방 침대 위였다. 일어나자마자 변기통을 붙잡고 속을 게워낸 후에 핸드폰을 집었다. 형준아, 정신 차리면 연락해. 강민희에게서 카톡과 페이스북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강민희에게 짧게 답장을 보냈다. 나 이제 괜찮아. 강민희의 답장이 오는 것은 읽지도 않은 채 다시 밀려오는 토기에 핸드폰을 침대 위에 대충 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강민희, 강민희 없나?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렸다. 강민희가 없다는 말에 책상 밑에서 몰래 핸드폰을 보던 것을 끄고 강의실을 크게 훑었다. 정말로 강민희가 없었다. 늘 앞에 앉아 교수님을 향해 서글서글하게 웃던 애가 없어지자 교수님마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각이나 결석은 하지 않는 애였는데. 저는 강 씨라 출석 부를 때 너무 불리하다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혹시 무슨 일 있나. 쓸데없는 호기심은 자꾸 이성을 짓눌렀다. 이내 신경을 끄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고개를 숙이는 순간, 뒷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강민희 학생 왔나?"

 

"죄송합니다, 교수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강민희였다. 그는 자연스럽게도 내 옆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안녕, 형준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강민희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교수님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흘끗 본 강민희의 입가가 누구에게 맞기라도 한 모양인지 보기 싫게 터져 있었다. 얼굴 빼면 볼 것도 없는 새끼가 다치고 지랄이야. 강민희와 친했던 때만큼 그가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예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출석을 끝낸 교수님은 강의를 시작했다. 지루한 강의가 시작되자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가득 울렸다. 형준아, 나랑 책 같이 보자. 모범생 강민희가 전공 책을 들고 오는 것도 잊은 모양인지 염치없게도 내 팔을 툭툭 찔렀다.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그와 나 사이로 슬쩍 책을 밀었다. 고마워. 그의 웃는 얼굴은 그냥 무시했다. 재수 없는 놈.

 

  수업은 항상 그랬듯 지루했다. 오늘은 쉬는 시간 없이 한 번에 수업하겠다는 교수님의 말에 탄성이 쏟아졌지만, 백발의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칠판과 같은 색의 옷을 입은 교수님이 분필을 탁탁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오늘따라 유달리 잠이 쏟아졌다. 필기를 하다가 빙빙 볼펜을 돌리던 손이 점점 움직임을 잃어갔다. 하품을 크게 하고는 슬쩍 강민희를 쳐다봤다. 근데 진짜 왜 다쳤을까. 쓸모도 없는 호기심은 나를 가득 채웠다. 강민희가 슬쩍 웃는 게 보여 고개를 다시 교수님 쪽으로 돌렸다. 네 얼굴을 볼 바에는 차라리 교수님이랑 상담을 하루 종일 하고 말지. 강민희는 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노란 포스트잇을 꺼냈다. 곧이어 볼펜으로 무언가를 쓰던 그는 포스트잇을 톡 뜯어서 내 앞에 붙였다.

 

 

 

  나 다쳤는데, 왜인지 안 궁금해?

 

 

 

  시발. 확 짜증이 몰려왔다. 강민희가 건넨 노란 포스트잇을 단번에 구겨서 바닥에 대충 버렸다. 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가만히 노려봤다. 강민희는 웃고 있었다. 너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강민희의 저의를 알 수가 없어서 더욱더 답답함만 쌓여갔다. 서걱거리는 돌덩이가 입안을 가득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강의실을 벗어났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강민희의 멱살을 잡을지도 몰랐다. 그대로 강의실 문을 조용히 닫고 화장실로 향했다. 시발, 재수 없는 새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세게 깨문 입술이 아프기만 했다.

 

 

 

  강민희는 이상했다. 성격도 좋고, 잘생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송형준에게는 그랬다. 내가 호감이 있다고 했던 사람만 사귀는 악질적인 습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걔도 그 아이들에게 호감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원하는 모습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은 귀찮지 않았다. 그저 성숙하지 못한 아이의 투정 정도라고 생각하고 늘 넘겼다.

 

 

 

 

 

"형준아, 나 다쳤어."

 

"오늘은 또 왜 다쳤어?"

 

"네가 챙겨주는 게 좋아서."

 

 

 

 

 

  강민희는 자주 다쳤고, 나의 잔소리에도 웃었다. 문제는 이거였다. 처음에는 그냥 작은 상처들 뿐이었기에 나는 그의 말을 웃으며 넘겼다. 그때 장난스럽게 하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1학기가 끝나갈 때, 같이 다니던 동기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온몸 곳곳이 다쳐 2주 동안은 꼼짝없이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당연히 나는 물론이고 과 친구들은 그 녀석을 걱정했고, 병문안을 가고, 강의 내용을 필기한 노트를 보여주는 것 따위의 정성을 보였다. 으휴, 제발 몸 좀 아껴라. 나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 위에 누워있던 동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때 내 신경은 온통 다친 동기를 향해 있었기에 강민희가 나를 어떤 표정으로 쳐다보는지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후회는 쓸모없는 시간 낭비라는 걸 알지만,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이 가끔 후회가 되곤 했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나갈 무렵, 강민희는 대뜸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깁스를 한 그를 처음 마주한 곳은 과방이었다. 형준아, 자? 익숙한 이의 인기척에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가 느리게 눈을 떴다. 강민희는 소파 끝부분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채였다. 그 얼굴이 섬뜩하다고 느껴져서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뭐야, 너 다쳤어? 내 시선은 그의 다리로 향했고,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한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둘러댔다.

 

 

 

 

 

"조심 좀 하지. 왜 다쳤어?"

 

"너 때문에, 형준아."

 

"나?"

 

"응. 계단에서 굴렀어. 너한테 관심 받고 싶어서."

 

"야, 강민희."

 

"그러니까 이제 그 새끼 말고 나도 걱정 좀 해 줘, 형준아. 나 진짜 질투나려고 하잖아."

 

 

 

 

 

  강민희가 말하는 '그 새끼'는 가엾게도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기 녀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날 향한 그 눈이 보통 때의 강민희와는 달랐다. 그 시선에 덜컥 겁이 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강민희를 버리고 과방에서 뛰어나왔다. 네가 챙겨주는 게 좋다는 강민희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두려움에 요동치는 심장을 다잡는 데에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종강을 하자마자 휴학 신청을 했다. 강민희가 이보다 더한 짓을 저지를까 두려워서 나는 겁쟁이처럼 도망을 쳤다. 그런데 강민희는 여전했다. 그는 징그럽게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

 

 

 

 

 

"형준아."

 

"……왜 따라오는 거야, 왜."

 

 

 

 

 

  강민희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는다. 답답한 마음이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퍽퍽했다. 늘 웃던 강민희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너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제발 이러지 말아줘.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내가 결국 눈물을 보여야 강민희가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너 때문애 다친 거라던 강민희가 자꾸 생각났다. 나를 보며 서늘하게 웃던 강민희가 자꾸만 떠올랐다. 너 진짜로 제정신 아니야. 어떤 애원에도 강민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용한 화장실 안에 너와 나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서늘한 공기가 화장실에 가득했다.

 

 

 

 

 

"내가 왜 네가 좋아했던 여자애들만 사귀었는지 모르겠어?"

 

 

 

 

 

  답을 알고 싶지 않은 질문이 강민희의 입안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시선을 피하는 일 뿐이었다.

 

 

 

 

 

"형준아, 좀 궁금해 해주면 안돼?"

 

"내가 왜?"

 

"나는 네가 나한테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매 순간 궁금해하고, 혼자 병신같이 기대하고 있는데, 너는 정말 아니야?"

 

 

 

 

 

  직감했다. 끊어진 기억 뒤에 나는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엉성하게 박음질을 해 두었던 기억의 실밥이 툭 풀리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다. 형준아, 너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어깨를 세게 잡은 강민희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 잘난 눈에서 뚝뚝 눈물을 보였다. 늘 웃음만 짓던 강민희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울기 시작했다. 아마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순간이 너에게는 꽤나 큰 기억으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직감하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정신을 지배했다. 그 잘나신 강민희가 나 때문에 무너져서 엉엉 우는 꼴이 퍽 우스웠다. 자꾸만 웃음이 나와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한숨을 쉬는 척 웃음을 삼켰다. 형준아, 송형준, 제발 나 좀 봐줘. 강민희가 애처롭게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겨우 감정을 지우고 고개를 들었다. 강민희의 하얀 얼굴 가득 눈물이 흥건했다. 아, 다시 보니 정말 불쌍한 새끼는 바로 너였구나.

 

 

 

 

 

"형준아, 진짜 많이 좋아해."

 

"……민희야, 네 마음은 썩었어."

 

"나 너 정말 좋아해. 진짜 너무 좋아서 죽어버릴 것 같아."

 

 

 

 

 

  아이처럼 엉엉 우는 강민희의 목덜미를 잡았다.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화장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강민희의 입술 위에 입을 맞추었다. 눈물의 짠맛이 입술 틈을 파고들어 왔다. 나는 여전히 강민희에게 엿을 먹이지 못해 혈안이 된 상태였다.

 

 

 

  민희야,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시작부터 썩은 마음이었던 이 마음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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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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