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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날, 나는 비가 올 줄 모르고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싶을 때 앞에 같은 학년으로 보이는 애가 우산을 쓰고 있었다. 나는 살가운 성격이라 그 애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우산 같이 써도 되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내가 그 애에게 다가가자 그 애는 나를 아는 눈치였다.

 

 

“안녕?”

“어..강민희?”

“어? 너 나 알아?”

“응. 너 10반이잖아. 나는 3반 송형준.”

“어떻게 알아? 나 우산 좀 씌어줄 수 있어?”

“그래. 같이 쓰자.”

 

 

그때 형준이의 귀가 살짝 붉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는 형준이가 정말 착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형준이는 나한테 그냥 ‘친구’일 뿐이었다.

 

 

 

시작과 끝

w. 찐사랑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사귄 적도 없다. 한마디로 나는 모태솔로다. 시원한 성격과 뚜렷한 이목구비로 남녀 상관없이 인기가 많았지만 나는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요즘에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기긴 했다. 3반 송형준. 처음에는 그냥 갈색 머리의 곱슬머리에 착한 친구. 그게 다였다. 처음에 나는 형준이가 계속 생각나고 지나가다가 형준이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숨게 되는 게 왜 그런지 몰랐다. 자꾸 심장이 막 콩닥콩닥한다. 고장 난 것 같이 마구 뛰는 심장에 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 처음 느껴보는 이 낯선 감정이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나는 아이돌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잘 몰랐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형준이가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걱정도 된다. 설마 내가 진짜 송형준을 좋아한다고? 에이 말도 안 돼. 아니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원래도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 친척 중에 동성애자가 있어도 아무 신경도 안 쓴다. 근데 형준이가 어떨지 모르는 게 관건이었다. 짝사랑이 처음이라 버틸 수는 있겠지만 형준이가 여지를 1도 주지 않으면 포기가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준이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3반 앞에서 형준이를 찾으려고 기웃거렸다. 그때 형준이가 친구랑 매점가려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형준이를 보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야 강민희 무슨 일이야?”

“아 그게.. 너 혹시 잠깐 시간 돼?”

“응. 할 말이 뭔데?”

“너 그..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뭐? 어.. 별생각 없는데?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뭐야 그게.. 암튼 이제 곧 종친다. 잘 가”

 

 

형준이는 그 말을 끝으로 반으로 곧장 들어갔다. 아니 사실 들어가다가 문을 열고 빼꼼히 쳐다보며 이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냥 너무 귀여워서 나만 알고 싶었다.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오늘 밤 꿈에 네가 나왔다. 매일같이 예쁘게 웃던 그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웃어줬다. 너무 예뻐서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 미소, 꿈에서 보니 더 빛나 예뻐 보였다. 꿈에서는 내가 형준이를 좋아하게 된 순간을 보여줬다. 작은 노란 우산 속에서 두 어깨가 맞대어있고 너랑 나는 마주 보고 예쁘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때 그 형준이의 예쁜 눈웃음에 반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고 형준이는 그때도 귀여웠다. 형준이를 챙겨주고 싶어서 내 한쪽 어깨가 홀라당 젖어 버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준이는 나에게 스며들었고 걷잡을 수 없이 내 마음이 커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형준이를 좋아하게 돼 버린 것이다.

 

 

 

나는 형준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라도 되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었다. 나는 넓은 친구 관계를 이용해서 형준이의 친구들과 먼저 친해지고자 했다. 그러고 자연스럽게 형준이와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려는 계획이었다. 형준이와 가끔 이야기는 하는 편이지만 밥까지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냥 계속 붙어있고 싶다. 나는 형준이의 제일 친한 친구와 같은 동아리여서 아는 사이였다. 나는 그 애에게 밥 먹을 친구가 없다고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러니 그 친구는 일단 알겠다고 했다. 급식실에 가니 형준이와 그 애 둘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은근슬쩍 그 자리에 끼며 형준이에게 인사했다.

 

 

“형준아 안녕”

“야 강민희 네가 왜 여기서 밥을 먹어?”

“그럼 안돼?”

“아니 네 친구 두고 왜 우리랑 먹나 해서.”

“그냥 너네랑 먹는 게 더 좋아”

“좋다고?”

“응. 좋아.”

 

 

형준이는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빼꼼 나온 귀는 살짝 붉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형준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힐끔힐끔 형준이의 밥 먹는 모습을 봤다. 토끼도 아니고 오물오물하며 먹는 게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형준이와 그 친구는 나를 이상하게 봤지만 나는 형준이 얼굴만 계속 감상했다. 가끔씩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형준이한테만 보여주는 미소를 보여줬다. 그럴 때면 형준이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냥 그런 형준이가 너무 귀엽고 좋아서 시간이 이대로 멈춰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형준이가 아직 낯을 가려서 우리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형준이와 밥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드디어 형준이와 전화번호 교환을 했다. 진작 했어야 했지만, 용기가 안 났다. 형준이가 먼저 말을 해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매일 형준이와 같이 밥을 먹었다. 덕분에 친구들이 뭐라고 하긴 했지만 잠시 그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쉬는 시간마다 형준이 반에 가서 놀았다. 매일 형준이 볼과 귓불이랑 목젖을 만지니깐 형준이는 그럴 때마다 계속 얼굴을 붉히고 있다. 그래서 더 만지고 싶어졌다.

 

 

 

요즘 형준이와 연락을 되게 자주 한다. 사소한 일이라도 일일이 다 보고한다. 형준이도 이제 그런 게 익숙해졌는지 일일이 보고하는데 귀여워서 죽어버릴 것 같다. 이렇게 귀여운 형준이가 모태솔로라는 사실이 제일 놀라웠다. 형준이는 아주 가끔 교실에 찾아왔다. 말로는 줄 게 있다고 하는데 다 방금 사 온 거 티 나는 음료수 같은 것을 주러 찾아왔다. 이럴 때마다 계속 착각하게 된다. 혹시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다.


 

“형준아 너 왜 맨날 이런 거 사서 우리 반 오는 거야?”

“집에서 가져온 건데 너도 주려고”

“매점에서 산 거 아니고?”

“뭐야 네가 어떻게.. 아닌데”

“아닌 게 아닌데 딱 봐도 티 나잖아.”

“티 나?”

“어. 완전.”

“모른 척 해주라”

“싫은데.”

“왜애”

“그럼 오늘 나랑 야자 째고 놀러 가자.”

“어디?”

“영화 보고 밥 먹고 그러자.”

“뭐야 완전 데이트 같잖아.”

“데이트 맞는데?”

“뭐? 내가 왜 너랑 데이트를 해?”

“그래서 안 갈 거야?”

“땡땡이는 치고 싶어.”

“그럼 나랑 놀자.”

“..그래.”

 

 

나는 형준이와 땡땡이를 치고 첫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물론 형준이한테는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나는 지금 굉장히 설렌다.

 

 

 

다행히 우리는 땡땡이를 치는 데에 성공했다, 선생님 눈을 피해 도망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형준이와 함께여서 내 인생 첫 일탈에 성공했다. 형준이도 처음이었는지 도망가면서 계속 걱정을 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열심히 뛰어서 교문을 겨우 통과했다. 통과하고 난 후에도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형준이가 계속 손을 꼼지락거리며 빼려고 하길래 더 꽉 잡았다.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그때 형준이가 깜짝 놀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형준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을 것 같다고, 형준이도 내가 이 손을 영원히 놓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 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한참을 걸었다. 서로 오가는 말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형준이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표를 예매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석식 먹고 올걸”

“왜애 나랑 밥 먹어야지.”

“석식 먹을 때도 같이 먹잖아.”

“그래도 밖에서 따로 둘이서 먹는 건 처음이잖아.”

“응. 그치.”

“형준아 뭐 먹을래?”

 

 

우리는 간단하게 먹고 영화 시간에 늦지 않게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이 시간에 볼 게 로맨스밖에 없어 남고딩 둘이서 로맨스 영화를 보러왔다. 나는 왠지 기분이 간질간질해서 힐끔힐끔 형준이를 봤다. 형준이도 나처럼 살짝 긴장한 것 같았다.

 

 

‘나만 이런 거 아니구나.“

 

 

영화가 시작한 지 중간쯤 되자 분위기가 고조되며 키스신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형준이를 슬쩍 봤는데 너무 진지하게 보고 있길래 귀여워서 손을 살짝 잡았다. 형준이는 움찔하며 나를 째려봤다. 그러더니 손깍지까지 꼈다. 나는 너무 놀라서 형준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너 뭐 하는 거야?

-네가 먼저 잡았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

-잘못했지?

-응..

-그럼 가만히 있어.

-..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영화를 보고 나왔다. 형준이와 잡은 손이 너무 뜨거워서 땀까지 났다.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손을 신경 쓰느라 영화를 볼 수가 있었어야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가 형준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야 너 아까 손은 왜 잡은 거야?”

“그냥 네가 되게 집중해서 보길래.. 귀여워서.”

“뭐?”

“네가 귀여워서 그랬다고.”

“강민희가 잘못했네! 그래놓고 나보고 뭐하냐니.”

“네가 귀여운 잘못이야.”

“뭐래.”

 

 

우리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집에 갔다.

 

 

“야 근데 너 집이 어디냐?”

“나 너 데려다주려고.”

“내가 애냐?”

“그냥 데려다주고 싶어서.”

“그러던가.”

 

 

우리는 서로 표현이 서툴렀고 표현이 미숙했다.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형준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나는 그 용기를 가졌고, 처음이자 마지막 첫사랑인 형준이에게 고백할 것이다. 사실 거절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오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형준이의 집과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긴장되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다 생각을 했는데도 형준이 앞에 서니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멋있는 멘트를 준비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 집 다 왔어. 너도 이제 가봐.”

“형준아.”

 

 

나는 너에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내 시작과 끝은 송형준 너야. 넌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첫사랑이야.”

“민희야..”

“내 처음과 마지막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형준아.”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어?”

“좋아해 강민희.”

“좋아해 송형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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