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형준은 겨울을 싫어했다. 두껍게 옷을 껴입는 것도, 날이 추워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도, 코끝을 차갑게 만드는 시린 공기도, 특유의 차가운 공기의 냄새도 싫어했다. 송형준은 겨울을 싫어했고, 흰 눈을 싫어했다. 나는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는 날에는 집 밖에 나가지조차 못하는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형준아, 진짜 괜찮아? 학교는?”
“무서워, 싫어.”
“알겠어. 조금 더 자.”
밤사이에 눈이 무섭게도 내렸다. 쌓인 눈은 성인 남성의 발목까지 차올랐다. 눈을 아무리 치워도 길거리에는 하얀 눈이 가득하였다. 송형준은 두꺼운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런 날만 되면 그는 어디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창밖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가엾은 송형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의 온기에 조금 진정이 된 듯한 그가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손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좋은 모양인지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송형준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형준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여전히 그는 대답이 없었다. 혼자 있어도 괜찮지? 송형준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송형준의 걱정이었다. 아주 조용히 현관문을 조용히 닫았다. 도어록의 기계음이 짧게 울리며 문이 잠겼다. 송형준의 손을 잡고 창밖에서 내다보았던 거리는 단조롭고도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하였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은 무채색으로 물들었다. 아까 봤던 색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발을 꼭 감싸는 하얀 운동화가 눈 위를 밟았다.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길에 울렸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어 눈이 시렸다.
마가렛 한 다발을 당신에게 전합니다
마틴
*컬러버스 세계관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은 무채색이었다. 나에게 허용된 색은 오직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미세하게 명도가 다른 회색들뿐이었다. 흔한 병은 아니었다. 아주 드문 확률로 이런 증상을 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며 가끔씩 의학 프로그램 따위에서 소개가 되었다. 만 명 중에 한 명만이 이 증상을 가지고 태어나죠. 어린 나와 눈을 마주한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색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나는 색을 알 필요도 없었다. 나에게 허용된 몇 되지 않은 색 중에서 흰색을 가장 좋아했다. 흰색을 보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하얀 눈이라도 가득 쌓이는 날에는 남들과 제가 비슷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라도 빠질 수 있어서, 그래서 겨울이 좋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좋아하는 것이 즐거운 것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나의 19번째 겨울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때의 나는 검정고시를 본 후에 수능을 봤고,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을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수험 생활이 끝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매일 거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본다던가, 컴퓨터 게임을 한다던가, 핸드폰만을 붙잡고 있다던가 등 비생산적인 일만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 그 겨울은 20살이 되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차가운 계절이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랬다. 20살이 될 때까지 운명의 상대를 찾지 못하면 평생 시력을 잃는다고. 그렇지만 나는 그런 말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 겨울은 이유 없이 태연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상을 평생 잃는다고 해도 두려울 것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나의 19번째 겨울은 무료하고도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그 답답한 틈에 작은 구멍을 뚫듯, 송형준이 빌어먹을 강민희의 인생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그 겨울의 한복판에서 예고도 하지 않은 채 송형준을 데려왔다. 엄마 친구 아들인데, 사정이 있어서 잠깐만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 그에 대한 의심을 하고 호기심을 가질 마음조차 없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인생에 송형준이라는 사람 하나가 끼어든다고 해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으리라고,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송형준은 겁이 많았다. 낯가림이 심했고, 우리와 말도 잘 섞지 않았다. 하루에 반 이상은 제 방에 틀어박혀 머리카락 한 가닥도 보여주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송형준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송형준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가 아니었으니 남의 아픔을 깊게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고, 그럴만한 호기심도 없었다. 그런데 자꾸 송형준이 거슬렸다. 나는 그랬다. 가끔 신경이 쓰이는 행동을 하는 송형준이 아주 가끔 거슬렸다.
쨍그랑, 유리로 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놀란 심장과 함께 부엌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부엌에 가만히 서 있는 송형준은 대답이 없었다. 중얼거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송형준은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랐다. 그러니 그 커다란 소리에 놀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송형준은 자신의 옷 끝부분을 잡고 벌벌 떨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송형준의 귀에 그런 한숨 소리 따위가 들릴 리는 없었다.
“야, 괜찮아?”
“미안해, 미안해.”
당장이라도 유리그릇처럼 깨질 것 같이 서 있던 송형준의 손을 잡았다. 누군가의 온기에 정신을 차린 송형준이 고개를 들었다. 송형준이 커다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작은 얼굴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두 눈망울이 참 예쁘고 깊었다. 맑은 눈에 눈물이 구슬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그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을 하기도 전에, 세상이 이상하게 물들었다.
“민희야, 괜찮아?”
온통 희고 검기만 하던 세상이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로 물들었다. 뭐라 불러야 할지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나는 송형준의 손을 꾸욱 잡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꿈쩍도 하지 않는 나를 되려 송형준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민희야, 강민희. 괜찮아?”
“어? 어, 너는? 다친 데는 없지?”
마법과도 같았다. 아니, 마법보다 더한 기적이었다. 운명의 상대와 살을 맞대면 색을 볼 수 있다느니, 운명의 상대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평생 색을 볼 수 있다느니 따위의 말은 전부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동안 그 많은 사람이 했던 말은 전부 거짓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게 진짜 세상이구나. 송형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창밖을 쳐다봤다. 하얀 눈 위로 겹겹이 쌓인 온갖 색에 물든 거리가, 평소와 그다지도 똑같은 모양의 거리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다. 눈동자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창밖을 향해 있던 시선이 곧 송형준과 맞닿았다.
내 운명은 너구나.
송형준의 맑은 눈동자는 검은색보다 조금 옅은 색을 띠고 있었다. 송형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들지 않은 눈동자가 저를 빤히 향해 있었다.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자극했다. 나는 욕심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욕심이 났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계속 보고 싶었다. 시력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멍청한 다짐은 새하얗게 잊었다. 이리도 아름다운 세상을 평생 보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나를 어떻게든 사랑하게 만들어서, 내가 너를 어떻게든 사랑하게 만들어서라도 이 세상을, 찬란함을 지키고 싶었다.
*
네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송형준은 이미 나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그게 눈에 너무 보여서, 모른 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도 송형준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몰라서, 어떤 감정이 사랑의 마음인 줄도 몰랐기에 더욱더 어려웠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다. 진정한 사랑을 알기에는 참 어렸다. 그런데도 나는 송형준을 사랑하는 척을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래야 그토록 원하는 이 세상을 볼 수가 있으니까.
“형준아, 좋아해.”
다정함으로 포장된 거짓에도 송형준은 쉽게 눈물을 흘렸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에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그는 내 손을 잡았다. 바보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살이 되기까지 딱 한 달이 남은 날이었다. 눈 대신에 비가 내렸고, 겨울을 무서워하던 송형준은 겨울이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송형준은 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싫어하는 겨울이었음에도 맞닿은 온기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송형준은 웃었다. 그가 시도 때도 없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다. 그 예쁜 얼굴에 가끔 죄책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욕심이 아주 많았고, 남의 마음보다는 나의 행복이 더 중요한, 아주 철이 없는 사람이었다.
“민희야, 진짜 많이 사랑해.”
“나도. 나도, 형준아.”
나는 절대 송형준에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송형준이 먼저 마음을 고백하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음이 거짓인 걸 알고도 송형준은 저렇게 예쁘게 웃을 수 있을까. 송형준의 손을 고쳐잡았다. 선연한 색들이 눈앞을 물들였다. 온전하게 모든 색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송형준에게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망설임 없이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송형준은 예상이라도 한 듯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떨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고 입을 맞추었다. 쿵쿵, 울리는 심장의 소리가 귀를 아찔하게 채워나갔다. 서툴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떼었다.
“형준아, 나는 세상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어.”
“응, 나도.”
창밖에 드리워진 푸른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송형준의 손을 놓았다. 이제 네가 없이도 온전히 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헛된 기대감이었다. 송형준의 손을 놓자마자 세상이 다시 모든 색을 잃었다. 예쁜 붉은색이었던 송형준의 얼굴의 색도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고, 허망했다. 왜 아직 안 되는 거야, 왜.
“형준아, 나 정말로 좋아해?”
“응, 당연하지.”
송형준의 얼굴에는 거짓 하나 묻지 않았다. 나는 다시 흑백으로 물든 송형준의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그렇다면 왜 내 세상은 아직 빛을 찾지 못한 거지?
*
나는 애꿎은 송형준을 자꾸 탓하려 했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송형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아주 커다란 문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송형준에게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런 척을 하는 것도 점점 지쳤다. 나의 19살은 이제 1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송형준을 사랑할 수 없었고, 동시에 이 세상을 놓기가 싫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까. 짧게나마 이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가끔은 송형준의 얼굴을 보는 것도 미웠다. 만약 네가 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미련 없이 시력을 잃는 쪽을 택했을 텐데. 송형준이 많이도 원망스러웠다.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은 작년과 달리 참으로 눈이 많이 내렸다. 창밖에 눈이 가득 쌓인 걸 확인한 나는 바로 송형준의 방으로 향했다. 눈이 무섭다던 송형준의 말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불 속에 틀어박혀 한 걸음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덜덜 떠는 약해빠진 강아지 같은 송형준의 등을 작게 토닥였다. 보잘것없고 가여워서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람. 송형준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그의 이불을 살며시 거두었다.
“형준아, 자?”
“……민희야, 나는 눈이 싫고 흰색이 싫어. 그리고 빨간색도 너무 싫어. 근데 눈만 보면 빨간색이 자꾸 생각나.”
너에 대한 원망을 가득 안고 너를 품에 안았다. 나는 네가 말하는 그 색들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답 없이 그를 꼬옥 안았다. 송형준은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다. 뭐가 그리도 무서운지 엉엉 울었다. 부모님께 얼핏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겨울과 교통사고, 그리고 돌아가신 그의 부모님과 그가 지내던 시설에 관한 이야기들. 너무 아픈 상처라 쉬이 건드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백 마디의 위로보다 값진 온기를 나누어주며 그의 등을 다독였다.
“나 여기 있어. 괜찮아, 형준아.”
거짓인지 아닌지 이제는 나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말들이 술술 쏟아졌다. 이리도 가여운 사람을 나 아니면 누가 지킬 수 있을까. 오만함이 자꾸 마음을 파고들었다. 내가 너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자꾸만 생겼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어렸다. 내 마음을 알기에, 네 마음을 받기에, 나는 너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같은 이불을 덮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핫초코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송형준이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으면 나는 하얀 머그잔에 핫초코를 가득 담아 그에게 건넸다. 송형준은 내 손을 잡았다, 나의, 우리의 19살은 고작 7일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너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이 손을 평생 잡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까. 나는 너를 사랑할 수나 있을까. 어느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너와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이 좋았다. 서로의 머리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간이 소중했다.
*
우리의 19살이 딱 4일 남았던 날, 너는 이제 더 이상 눈을 무서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 밖에 나갈래? 나의 물음에 너는 무슨 일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송형준은 나와 같은 나이였으면서 가끔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이곤 했다. 무서움에 당당히 맞서려고 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그의 볼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너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현관문 앞에 섰다. 가자, 민희야. 나를 향해 내민 그 손이 사랑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길거리에는 흰 눈이 가득했다. 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하얀 길을 위태롭게 걸었다. 나는 눈이 무서워.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너의 손을 꼭 잡았다. 유달리 차가웠던 그 손을 꼭 잡았다. 불안한 마음이 자꾸 올라오려고 했다. 그 마음이 속에 가득 차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불안함을 가득 머금은 토를 내뱉고 나면, 그냥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
“형준아, 우리 집에 갈까?”
“벌써? 나 괜찮아.”
“……그래? 그럼 더 있다가 가자.”
마음 깊이 핀 불안의 꽃이 도통 시들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네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민희야, 나는 너랑 있으면 그 어느 것도 무섭지 않아. 내 손을 꼭 잡은 네가 웃었다. 너는 그냥 바보 같이 웃었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괜한 착각일 거야. 식어가는 우리의 손을 꼭 잡았다.
“형준아, 손 안 시려?”
“조금?”
“그럼 나 잠깐 편의점 갔다 올게.”
“응, 알겠어. 여기서 기다릴게.”
건너편에 있던 편의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꾸만 불안해져서 송형준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핫팩과 따뜻한 음료 한 캔을 사고 다시 편의점을 나왔다. 신호등 앞에서 웃는 너를 향해 손을 느릿하게 흔들었다. 너는 아주 예쁘게, 내가 아주 사랑하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마음 깊이 퍼져있던 꽃이 톡 망울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밝은 얼굴로 웃던 네가 사라진 건. 나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가득 모인 차도 위로 향했다. 아까까지 빨간색이었던 신호등의 색이 변했지만, 그 어떤 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빵빵거리는 경적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무서운 너의 이름을 꼭꼭 삼키고 그 앞으로 향했다.
“형준아.”
“나 아파.”
“말하지 마. 곧 구급차 올 거야.”
“……나 너 진짜 좋아해, 민희야.”
“나도, 나도 진짜 많이 좋아해.”
처음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너의 손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붉은색이 이런 색이구나. 네가 무서워할 만도 하네. 진하디진한 색이 너무나 낯설어 눈을 잔뜩 찌푸렸다. 하얀 눈을 적시는 붉은색에 사람들의 비명이 어지럽게 몰아쳤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너의 손을 붙잡았다.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그에 대응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모든 것을 얻은 줄 알았는데, 전부 나의 착각이었나 봐. 타의에 의해 차가운 너의 손을 놓았다. 주변을 시끄럽게 떠도는 소리들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하얀 눈을 물들인 피는 붉었다.
강민희는 겨울을 싫어했다. 두껍게 옷을 껴입는 것도, 날이 추워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도, 코끝을 차갑게 만드는 시린 공기도, 특유의 차가운 공기의 냄새도, 붉은색이 떠오르는 하얀 눈도 싫어했다. 어른이 되다 만 강민희는 겨울을 싫어했고, 누군가를 자꾸 떠오르게 하는 흰 눈을 싫어했다.
FIN.